‘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62·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이 현직 시절 청와대 측에 당시 사법부 최고 역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도와달라고 직접 요청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특히 이를 위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법원 판결을 ‘거래 카드’로 쓰려 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박 전 대법관은 이후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직을 제의받았다. 박 전 대법관과 청와대가 긴밀한 관계였다는 정황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박 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 처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2015년 2월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대법원에서 만난 것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도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관 출신의 곽 비서관은 지난 2015년 1월 김종필 전 법무비서관의 후임으로 임명됐고, 인사차 대법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이 자리에서 박 전 대법관이 곽 전 비서관에게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추진하고 있으니 잘 도와 달라. 청와대 내부 사정과 관련해 행정처가 알아야 될 내용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취지로 말한 정황을 확인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 추진을 위해 청와대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 등을 논의하는 등 이미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박 전 대법관이 곽 전 비서관에게 상고법원 도입 편의를 직접 요청한 것이다.
특히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이를 위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법 판결에 대한 언급도 내놓은 정황도 포착했다. 당시 행정처가 작성한 것으로 조사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는 지난 2015년 2월 원 전 원장 항소심 선고 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법부에 불만을 표시하고, 전원합의체 회부를 희망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법관은 곽 전 비서관에게 “원 전 원장 항소심 판결 선고와 관련해 (우병우) 민정수석이 불만이 많다더라. 설명을 잘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검찰은 확인했다. 항소심 선고와 관련해서 대법원의 입장을 청와대 측에 전달해줄 것과 동시에 상고심에서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박 전 대법관의 이런 적극적 태도에 당시 청와대도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런 모임이 있고 두달 뒤인 지난 2015년 4월 박 전 대법관이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은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박 전 대법관 또한 이 전 실장과의 만남과 당시 총리직을 제의받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그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당시 이완구 전 총리의 후임자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맡게 됐다.
한편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고교 후배이자 투자자문업체 대표로 알려진 이모씨로부터 본인의 형사사건 상고심 재판을 맡아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은 정황을 확보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씨는 28억원대 법인세를 내지 않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로 재판에 넘겨져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재판이 대법원으로 접수되자 박 전 대법관에게 상고심 재판을 맡아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은 박 전 대법관이 속한 부에 배당된 것으로 전해졌고,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은 먼저 박 전 대법관이 이씨의 재판 상황을 알아봐 준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를 적용, 지난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아울러 재판부 배당 조작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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