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전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풍자화 ‘더러운 잠’을 훼손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화가에게 그림값 400만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15단독 김재향 판사는 화가 이구영씨가 예비역 해군 준장 심모(65)씨 등 2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심씨 등이 이씨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16일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김영아 판사는 지난 12일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 회원인 심씨 등에 대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이들은 2017년 1월2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전시된 박 전 대통령의 풍자화 ‘더러운 잠’을 벽에서 떼어내고 바닥에 던진 혐의를 받았다.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했다. 알몸 상태로 침대에 누운 박 전 대통령의 곁에 최순실씨가 서 있고, 이들 뒤에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를 둘러싸고 여성 혐오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시회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관했다.
김재향 판사는 “해당 그림의 전시나 판매가 불가능해 재산상 가치를 상실했다”며 “심씨 등은 재산상 손해에 대해 이 사건 작품의 시가 상당액인 400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심씨 등은 재판 과정에서 여성을 폄하하고 성적으로 희롱하는 내용이 담긴 음란한 도화 전시로 인해 특정인의 인격권 침해가 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였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판사는 “이 작품이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는 단순 음화라고 볼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인격권 침해요소가 있다 해도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실력행사로 나아간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 판사는 ‘빨갱이’, ‘여성 혐오 작가’ 등의 비난으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해달라는 이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이같은 비난들은) 작품의 내용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지 심씨 등의 행위로 인해 촉발되고 확대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이씨에게 재산상 손해의 배상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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