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을지로·청계천 재개발 제동 건 이유는?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23일 12시 09분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마디가 수년간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에서 진행되던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주민간 이견으로 인한 충돌과 인명피해가 가시화되자 박 시장이 철거 반대 주민 쪽의 손을 전격적으로 들어준 셈이다.

을지로·청계천 재개발 사업을 한순간에 뜨거운 감자로 만든 발언은 16일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다.

당시 을지로·청계천 재개발 문제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질문 내용은 “을지로에 있는 노포라고 할 수 있는 양미옥, 을지면옥이 재개발지역에 포함돼 사업시행인가 절차를 밟아서 결국은 철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을지로라는 곳이 갑자기 힙스터 플레이스로 각광받아서 10~20대들이 공구상가 주변 맛집 등을 찾으면서 도심 활성화를 이루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청사진대로 개발되면 피맛골의 르메이에르 같은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어 “피맛골에 있던 청진옥, 미진 이런 곳처럼 (을지로 노포들도) 역사만 있지 겉모습은 다 잃어버린 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보이고, 이는 서울의 관광적인 매력을 반감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그러자 박 시장이 반색했다. 그는 “현재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정확히 확인은 안 해봤지만 안 그래도 2부시장에게 말하려고 했다”며 “과거의 문화나 예술, 전통과 역사를 도외시했던 개발에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인 부분, 전통적으로 살려야 할 부분은 잘 고려해서 개발계획 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나아가 을지로·청계천 재개발 인가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그는 “적어도 제가 시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도시개발이 돼야 한다”며 “능하면 그런 것이 보존되는 방향으로 재설계하는 방안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돌발발언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발언이 서울시의 기존 방침을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을지로·청계천에 지상 20층 안팎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는 내용의 재개발 사업은 박 시장 재임기간 동안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던 사안이다.

박 시장의 돌발발언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쪽은 재개발을 추진하는 건설사와 재개발에 찬성한 토지주들이었다. 이들은 ‘서울시 인가를 받아 재개발 사업을 추진해왔고 토지주 80% 이상 동의를 얻어 적법하게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서울시가 입장을 갑자기 바꿨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개발 찬성자들은 을지면옥 등 재개발에 반대하는 노포 등이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등 갈등이 증폭되는 실정이다.

일주일간 논란이 증폭되자 서울시가 23일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미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곳의 경우 재개발을 허용하되 을지면옥 등 주민간 이견이 있는 구역의 사업은 연말까지 중단시키겠다는 것이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23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철거된 지역은 계획대로 추진될 계획”이라며 재개발사업 전반을 모두 중단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강 실장은 서울시 문화유산을 재개발사업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생활유산은 재개발로 인한 강제철거를 반대하고 있다”며 “보존하고자 하는 의사에 반해 철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갑작스레 이 지역 재개발에 관한 입장을 바꾼 이유도 설명했다.

강 실장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 계획이 수립된) 2014년 이후부터 공간뿐만 아니라 산업생태계와 생활유산 등에 관한 인식과 사회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민 인식이 달라졌다. 세운상가지역은 낙후되고 빈 가게도 많고 위험한 지역도 있지만 을지로 노가리 골목도 생활유산으로 지정됐다”며 “2014년에 생각하지 못했던 빠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 여러 의견을 듣고 계획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설명에도 재개발 추진주체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재개발 주체들이 공사 지연 등으로 인한 늘어나는 금융비용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시는 협의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강 실장은 “그분들이 소송도 할 수 있고 여러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시는 중구청과 공동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가장 큰 원칙은 생활유산 등이 법적인 요건에 맞다고 해서 강제철거되지 않게 행정적으로 조치하겠다는 것”이라며 재개발 강행으로 인한 노포 철거만은 막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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