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 잠룡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광화문광장을 매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으로 인해 행안부가 서울정부청사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게 됐다는 명분에서 양측 간 갈등이 불거진 것처럼 보이지만, 박 시장과 김 장관이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찌감치 기싸움을 시작한 게 이번 충돌의 본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장관과 행안부는 지난 23일 서울시를 상대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으로 인한 정부서울청사 기능 훼손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행안부는 ‘서울시 계획대로 광화문광장이 개조되면 정부서울청사가 공공건물로서 기능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청와대가 이달 4일 대통령 집무실의 정부서울청사 이전을 포기한다고 밝힌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연계돼 있는 상황에서는 김 장관이 박 시장과 서울시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지만 청와대가 발을 빼면서 김 장관이 부담을 던 측면이 있다.
표면적 쟁점은 정부서울청사 기능 훼손 여부다. 21일 서울시가 발표한 설계안대로 시공하면 정부서울청사 정문과 차량 출입구가 폐쇄되고 지상 주차장은 공원으로 바뀐다. 주차장 부지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옮겨놓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24일 뉴시스에 “행안부 서울청사관리소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는 (공개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GTX(광화문역)에 관해 얘기를 했듯이 (행안부가) 이 문제를 적시하지 않고 손 놓고 있다가 나중에 싸움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서울시는 행안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행안부가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추가 해명자료를 발표하며 수위를 조절하려 했지만 서울시는 그래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시는 행안부 입장표명 직후 시 관계자 명의로 “이번에 발표한 당선작을 토대로 관련 기관과 이해관계자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최종 설계에 반영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내부에서는 행안부의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와 관련해 지난해부터 4~5차례에 걸쳐 행안부와 실무협의를 거쳤다고 항변했다. 실무협의가 있었음에도 행안부의 보도자료에는 ‘협의도 없이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뉘앙스가 있다는 게 시의 불만이다.
시는 광화문광장 관련 실무협의에 임하는 행안부의 태도에도 불만을 갖고 있다.
시 관계자는 “행안부에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다”고 설명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와 연계돼 있던 대통령 집무실 정부서울청사 이전이 최종 불발되자 행안부가 이 문제에 흥미도 의지도 잃었다는 것이다.
행안부 입장표명 시점 역시 논란거리다. 도로망 개편에 의한 정부서울청사 우회도로 조성 방안은 지난해 4월에 발표됐었다. 설계도 공모과정이 있긴 했지만 정부서울청사 우회도로 조성은 공모 때 전제조건으로 제시됐다. 결국 우회도로 조성이 일찌감치 확정돼있었음에도 행안부가 그 당시는 문제 삼지 않다가 뒤늦게 반대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박 시장과 김 장관이 일찌감치 대선 전초전을 시작했다는 분석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박 시장이 광화문광장과 을지로·청계천 재개발 제동 등 폭발력 있는 사안을 연이어 터뜨리며 존재감을 키우자 경쟁자인 김 장관이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다음달 설 연휴 이후 단행될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 장관은 행안부 장관직이 끝나면 대구로 내려가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안부는 이런 해석에 손사래를 쳤다. 이번 입장표명에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이 자신의 대표사업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김 장관이 이의를 제기한 것을 계기로 양측 간 견제와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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