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고발하는 데 평생을 바친 고(故) 김복동 할머니는 모두의 기억 속에 다르게, 그러면서도 비슷하게 남았다.
암 투병 끝에 지난 28일 오후 10시41분께 눈을 감은 김 할머니의 빈소는 29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빈소에는 조문 허용이 시작된 오전 11시부터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한 이들이 줄을 이었다. 영정 속 김 할머니는 자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느라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들에게 은은한 미소로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10분께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김 할머니의 영정을 침통한 표정으로 한동안 바라봤다. 조객록에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가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두 사람은 ‘구면’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초 병원을 찾아 병상의 김 할머니를 만났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TF‘ 조사결과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청와대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 8명을 초청한 문 대통령은 김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불참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했다.
조문객 이종일(70)씨는 제암리 학살사건이 벌어진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만난 김 할머니를 기억했다.
이씨는 “김 할머니를 뵌 적이 있다”며 “일본인이 우리 국민을 학살한 그 제암리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여러 분 만났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 오늘 오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단체에서 활동 중인 한명희(65)씨는 수요집회에서 만난 김 할머니를 기억했다. 한씨는 “늘 가까운 거리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일주일에 한 번 집회에 나오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그렇게 힘든 몸을 이끌고 지난해 가을까지 계속 뛴 분”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김 할머니는 너무나 열정적으로 당신이 당한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고 국내 뿐 아니라 베트남 등 외국까지 다니며 또 다른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발로 뛰었다”며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전쟁 없는 사회, 인권이 짓밟히지 않는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조문객 박모(40)씨도 수요집회에서 본 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박씨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본 김 할머니가 기억난다”며 “고등학생 때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후원)배지나 팔찌를 사고 SNS에서 활동하는 식으로 힘을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고등학생 박채영(19)양·이상운(19)군은 생전의 김 할머니에게 기부금을 전달한 기억을 떠올렸다.
박양은 “2017년에 보라난꽃이라는 배지를 제작해서 기부하는 활동을 하면서 얻은 수익금을 직접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달하면서 김 할머니를 뵀었다”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공부하다가 파주에서 왔다. 어른이 돼도 이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할머니를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특별하게 기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50대 이선준씨는 “따로 인연은 없지만 한 명의 시민으로서 와야 할 것 같아서 조문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시민장으로 치러진다. 첫날의 상주는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맡았다.
진 장관은 “김 할머니와 손 붙잡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평양도 함께 같이 가자는 얘기를 했었다”며 “정말 견뎌 주시라,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보겠다고 말씀을 드렸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다시 한 번 이 모든 일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의 장으로서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전시 성폭력, 여성 인권문제 등에 대한 할머니의 관심을 이어받아 더 열심히 노력할테니 마음 편히 가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빈소에는 영화 ’아이캔스피크’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를 연기한 배우 나문희, 이정미 정의당 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도 찾아 김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발인은 2월1일 금요일이다. 병원에서 출발해 서울광장을 거쳐 지난 평생을 서슬퍼런 눈으로 지켜봤던 일본대사관 앞에서 노제를 치른 뒤 충남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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