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인 관광객 늘어도 서울 엉터리 표지판은 여전
“이렇게까지 잘못 쓴 건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요.”
28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지하보도에서 출구 안내 표지판을 살펴보던 한 중국인 관광객이 얼굴을 찌푸렸다. 전날 가족과 함께 서울에 온 이 관광객은 서울시청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표지판에 적힌 시청의 한자가 잘못 적인 것을 봤다. 안내표지판에는 올바른 표기인 ‘市廳(시청)’이 아닌 ‘보고 듣다’는 뜻의 ‘視聽(시청)’이라고 쓰여 있었다.
또 삼성전자와 삼성카드, 한국은행이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의 삼성본관을 가리키는 한자어 표기는 엉뚱하게도 ‘三星主(삼성주)’라고 돼 있다. ‘삼성이 주인’이라는 의미로 적은 것이다. 이 일대는 숭례문, 남대문시장 등과 가까워 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지만 지하보도의 안내판을 관리하는 중구는 엉뚱한 표기를 수년째 고치지 않고 있다. 남대문시장 앞 보행자 안내표지판은 남산공원을 안내하면서 일본어로 ‘トクスグン’이라고 표기해 놓기도 했다. ‘トクスグン’은 덕수궁을 소리 나는 대로 일본어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 중엔 한자 문화권인 중국인과 일본인이 특히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시정이 시급해 보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관광객 중 중국인은 478만9512명, 일본인은 294만8257명으로 각각 전체 1, 2위를 차지했다.
매년 수백 건의 외국어 안내표지판 표기 오류가 발견되고 있지만 행정력이 부족하고 관리부서가 제각각인 탓에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와 자치구, 산하기관 등이 관리하는 거리 표지판의 외국어 표기 오류를 조사한 결과 179곳에서 410개의 오류가 확인됐다. 오류가 발견된 곳은 공원, 지하도, 지하철역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표기 오류는 시 전역에 설치된 보행자 안내 표지판에서 특히 많이 발견됐다. 서울역, 숭례문, 삼성본관 등 중구 일대에 설치된 보행자 안내 표지판에서는 우체국을 영문으로 표기하면서 병원을 뜻하는 ‘Hospital’로 적어놓은 곳이 적지 않았다. 미술관을 안내하는 갤러리(Gallery)를 ‘Gallerly’로 잘못 쓴 것도 확인됐다. 그나마 영어 표기는 2016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표기 교정사업을 벌여 오류가 많이 고쳐진 편이다.
서울시는 일본어, 중국어 표기 기준을 만들어 시와 자치구, 산하기관이 통일해 적도록 하고 있지만 표지판마다 관리부서가 제각각이어서 애를 먹고 있다. 보행자 안내 표지판은 시 보행정책과가, 지하보도는 서울시설공단과 자치구가, 지하철은 서울교통공사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이 안내 표지판을 관리하고 있다. 외국어 표기를 담당하는 시 관광사업과가 2016년부터 오류를 확인해 관리 기관과 부서에 알리고 있지만 2016년 49.7%, 2017년 상반기엔 52.4%만 고쳐졌다. 중구의 남대문 지하보도처럼 오류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거나 민간이 제작한 안내 표지판은 포함되지 않은 통계다.
이은영 서울시 관광사업과장은 “일본어, 중국어의 경우 관광사업과에서 표기법 자문을 하고 있고, 긴급히 보수가 필요한 건에 대해서는 관리 주체의 동의를 받아 관광사업과가 직접 수정하고 있다”며 “올해는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내에서 외국어 표기 담당을 구마다 한 곳으로 일원화해 외국어 표기 오류를 정비하는 데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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