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모(70)씨는 몇년 전 목욕 중 얼굴에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거울을 들여다봤다. 얼굴에 작은 물집이 있어 긁다가 물집을 뜯어냈고, 아프지 않아 그대로 방치했다. 하지만 물집은 눈과 입 주변으로 계속 퍼졌고 윤씨는 얼굴이 쑤셔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병원을 찾은 윤씨는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통원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가끔 얼굴에 찌릿하는 통증을 겪고 있다.
명절은 가족들이 앓고 있는 질환을 살피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몸의 한쪽에 붉은 물집이 옹기종기 군집을 이뤄 띠 모양으로 생기는 대상포진도 주목할 만한 질환 중 하나다. 대상포진은 심각한 통증과 합병증으로 육체적·정신적·경제적 부담이 높은 데다 가족력이 발병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수두를 앓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상포진이 발병할 수 있지만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서 발병할 위험이 더 높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 대상포진 가족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예방에 적극 나서는 것은 어떨까.
◇대상포진 걸린 가족 있다면 발병위험 최대 6.2배 높아
3대 직계 가족 중 2명 이상이 같은 병을 앓고 있거나 앓았다면 ‘가족력’이 있다고 본다. 가족력은 유전적 요인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공유하는 생활 환경과 습관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대표적인 가족력 질환으로는 암, 고혈압, 아토피피부염, 탈모 등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상포진도 가족력 질환 중 하나다. 대상포진과 가족력의 상관관계를 확인한 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나 형제자매 중 대상포진에 걸렸던 환자가 있으면 그렇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대상포진에 걸릴 확률이 4.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부모 기준 약 3배)보다 가족력으로 인한 발병 위험이 높고, 암(직계가족 기준 2~9배)만큼이나 가족력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대상포진은 촌수에 관계없이 가족 중 대상포진에 걸렸던 환자가 있으면, 발병위험이 최대 6.2배나 높다. 따라서 평소에 대상포진을 앓았던 가족 구성원이 있는지 확인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재경 건국대 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대상포진은 면역력 저하가 주요한 원인인데, 가족은 식습관이나 생활 환경이 비슷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요인도 유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족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대상포진, 산통보다 심해…질병부담 높아
대상포진을 주의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상포진으로 유발되는 통증과 합병증 때문이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통증은 산통이나 만성 암통증 보다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상포진 환자의 96%가 이런 급성통증을 겪는다.
대상포진은 심각한 통증 뿐 아니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합병증으로도 악명이 높다. 가장 흔한 합병증인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피부병변이 완치된 후에도 수 개월에서 수 년 간 예측할 수 없는 통증을 일으켜 만성 피로, 수면 장애, 식욕부진, 우울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 대상포진은 발병 부위에 따라 합병증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상포진 환자의 10~25%가 경험하는 안부대상포진의 경우 실명, 안면마비, 청력 소실 뿐 아니라 뇌졸중, 치매 등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도 크다. 국내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상포진 입원환자의 평균 재원일 수는 약 8일로 1인당 평균 185만 원의 의료비를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료비와 더불어 생업중단으로 인한 2차적인 비용 부담도 발생한다. 대상포진 환자는 평균 5일 가량 일손을 놓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상포진 가족력 있는 50세 이상 백신접종 필수
대상포진의 통증과 합병증을 피하려면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대상포진을 예방하려면 규칙적인 운동, 올바른 식사습관, 충분한 숙면 등을 통해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좋다.
통증과 합병증 위험이 높은 50세 이상이라면 백신접종이 대상포진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상포진 백신은 50세 이상의 경우 1회 접종한다. 50대에서 약 70%, 60대에서 약 64%의 예방효과가 있다.
최 교수는 “심각한 통증과 합병증으로 본인과 가족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대상포진은 가족력 위험이 암보다 높은 만큼 이번 설은 대상포진 가족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대상포진은 백신 접종으로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족력이 있는 60세 이상은 병원을 방문해 예방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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