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응급환자 전용
헬기 도입, 권역외상센터 설립 등을 주도한 윤 센터장은 4일 병원 집무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됐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미안하다.”
7일 오후 9시경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윤 센터장의 아들 형찬 군(23)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떨궜다. 이어 이 교수는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윤 센터장에게 의지했다”며 “이게 다 윤 센터장에게 짐이 됐을 것”이라며 미안함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2주 전쯤 한 회의에서 윤 센터장을 만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윤 센터장은 안색이 좋지 않은 이 교수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이 교수는 며칠 뒤 콩팥(신장) 결석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이 의지를 갖고 버텨줬기에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이만큼 온 건데, 앞으로 막막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책 ‘골든아워’에서 고인을 두고 “한국의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속에 넣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적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8년 겨울, 윤 센터장 찾아갔을 때 ‘지금 이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냉소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동료들은 윤 센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허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윤 센터장과 1994년 수련의 생활을 함께한 허탁 전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고인은 응급의료 분야에 발을 디딘 뒤 일제시대 독립투사처럼 일해 왔다”며 “우리나라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세 발자국 앞을 그리며 정책을 준비했다”고 고인을 업적을 기렸다.
충혈된 눈으로 빈소를 찾은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응급환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른 의사였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한 동료 의사는 “의료계의 가장 험지를 지키다가 죽어서야 존경을 받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간이침대를 놓고 밤을 새우며 격무를 이어간 고인의 집무실 앞에는 한 시민이 남긴 꽃다발과 커피가 놓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윤 센터장의 죽음을 ‘순직’으로 표현하며 “숭고한 정신 잊지 않겠다”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설 연휴에도 고인에게는 자신과 가족보다 응급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애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응급의료 체계를 발전시켜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빈소에서 “의료진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잘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윤 센터장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복지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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