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연휴에 의사들이 잇따라 숨지자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숨진 의사들에게 큰 질병이 없었던 터라, 과로와 스트레스 등이 주요 사인으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4일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데 이어 가천대학교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2년차 전공의 A씨(33)가 지난 1일 당직근무 중 사망하자 의료계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50대 초반의 나이와 만성질환을 앓았던 윤 센터장과 달리 A씨는 30대 초반의 젊은 의사라는 점에서 사인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A씨는 병원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외상 등 타살 흔적이 없었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젊은의사의 돌연사에 대해 길병원은 “수련환경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과로사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의료계의 반감은 더 커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8일 입장문을 통해 “길병원의 입장에 유감을 표명하며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이승우 대전협 회장은 “고인이 과로로 숨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협은 길병원의 수련환경과 전공의가 1주일에 80시간 이하로 일하도록 명시한 전공의법을 지켰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과로는 업무와 스트레스로 피로가 누적돼 발생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을 방치하면 신체기능이 떨어져 과로사할 수 있다. 과로사는 과로에 의해 직접적으로 병이 발생해 숨지거나 기존 질병이 급속히 악화되는 두가지 형태로 나뉜다.
과로는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증 등 다양한 후유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를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의사들은 인턴과 레지던트로 활동하는 5년간 극한의 업무환경에 노출된다. 지난 2016년 12월23일 시행된 전공의법 이전에는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젊은 의사들이 부지기수였다.
전공의법 시행 이후에도 과로에 노출된 젊은 의사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가 지난해 5월 전공의 1208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1.9%가 1주일에 80시간 넘게 일한다고 답했다. 1주일에 평균 1회 유급휴가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응답도 27.1%에 달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는 “선배들은 인턴 때 100일 연속으로 당직근무한 경험을 마치 영웅담처럼 얘기한다”면서 “시대는 바뀌었고, 이제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안전한 근무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노동환경은 교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문윤수 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외과 교수는 “응급의학과 등 일부 진료과는 교수들이 1주일에 80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이 정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못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잇따른 죽음을 계기로 병원 내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대다수 의사들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1주일 내내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행한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근무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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