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이모 씨(25·여)는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휘핑가스 캡슐을 샀다. 휘핑크림을 만들 때 쓰는 가스였다. 하지만 이 씨는 휘핑크림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캡슐과 고무풍선을 이용해 서울의 모 호텔에서 지인들과 함께 휘핑가스를 마셨다. 휘핑가스의 주성분이 아산화질소(N2O)라는 걸 악용한 것이다. 이들은 아산화질소를 마시고 호텔에서 소란을 피우다 경찰에 적발됐다.
아산화질소는 정부가 2017년 환각물질로 규정해 흡입을 전면 금지한 물질이다. 당시 아산화질소를 풍선에 담은 ‘해피벌룬’(마약풍선)이 젊은층에 유행해 환각파티가 성행하자 규제에 나선 결과다. 현행 화학물질관리법과 시행령은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기 위해 소지하거나 실제 흡입한 사람을 3년 이하 징역형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구매자가 흡입할 목적으로 사들이는 걸 알면서 판매한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아산화질소와 같은 성분인 휘핑가스는 인터넷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식품첨가물로 분류된다는 이유에서다. 환각물질을 관리하는 환경부 관계자는 “현행법에서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할 목적으로 판매, 소지할 때만 처벌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휘핑가스를 사고파는 것만으론 흡입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판매를 규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인터넷에서 휘핑가스를 구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본보 기자가 7일 인터넷 오픈마켓을 통해 휘핑가스 캡슐 10개를 구입하는 데는 불과 2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하루 만에 배송됐다. 구매할 수 있는 수량도 제한이 없었다. 미성년자가 구입할 수 있는 제품도 있었다. 상품정보를 알리는 글에는 ‘용도 외 사용금지’라고 했지만 판매자가 구매자의 구입 용도를 파악할 방법은 없다. 심지어 ‘함께 구입할 수 있는 상품’ 목록에 고무풍선이 있었다.
‘휘핑가스 해피벌룬’으로 환각파티를 벌이다 처벌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생 황모 씨(27·여)는 휘핑가스를 구입해 집에서 해피벌룬을 만들어 마시고 소란을 피우다 이웃의 신고로 적발돼 지난해 1월 1심에서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강모 씨(34)는 노래방에서 분무기를 이용해 휘핑가스를 흡입한 혐의로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아산화질소가 환각물질로 지정된 뒤 유흥주점이나 길거리에서 해피벌룬을 파는 일은 줄어들었다”면서 “하지만 가정에서 휘핑가스를 흡입하면 사실상 단속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산화질소를 임의로 흡입하면 저산소증으로 온몸이 마비되거나 심지어 숨질 수도 있는 만큼 휘핑가스 유통과 판매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선진국처럼 휘핑가스 판매기록을 점검하고 감독해 무분별한 아산화질소 유통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은 뉴저지와 위스콘신, 애리조나 등 많은 주에서 아산화질소를 판매하는 사람이 구매자 이름과 구매 수량 등이 들어간 판매기록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 주는 보건당국이 2년에 한 번씩 판매기록을 점검해 위법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을 경우에만 판매허가증을 갱신해준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6년부터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만 아산화질소를 의료 용도로만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아산화질소를 의료용 마취 보조제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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