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겠다는 내게 감독님이 열쇠 주셔” 서울대 가서도 유도-삼보로 꿈 키워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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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린 삼보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한 뒤. 신재용 씨 제공
최근 열린 삼보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한 뒤. 신재용 씨 제공
유도선수 출신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신재용 씨(25·체육교육과 3학년)는 최근 열린 삼보 국가대표 선발전 남자 57kg급에서 1위를 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16일부터 시작되는 삼보국가대표 훈련에도 본격 참여한다. 신 씨는 유도로 다 펼치지 못한 꿈을 삼보에서 펼치겠다는 각오다.

“유도에서 내 장기인 다리잡아어깨로메치기 기술이 2012년부터 공식 경기에서 쓸 수 없게 됐다. 삼보에서는 그 기술을 쓸 수 있다. 유도로 국제무대에서 2위만 했는데 애국가를 울려보고 싶은 꿈이 아직도 있다. 그래서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 정식 종목인 삼보에서 금메달에 도전하기 위해 유도와 삼보를 병행하고 있다.”

러시아 격투기 중 하나인 삼보(sambo)는 러시아어로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호신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도와 경기 방식이 비슷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정식 종목이 됐고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열린다.

‘호신술을 배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성화로 5살 때부터 유도장을 다닌 신 씨는 서로 몸을 붙잡고 쓰러뜨리고 메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함열초교(전북 익산) 4학년부터 선수로 등록해 각종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유도 명문 원광중(전북 익산)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걸었다.

“당초 엘리트 선수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대회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그저 운동 차원이었다. 그런데 전국대회에서 입상하자 원광중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원광중을 선택했다.”

초등학교 때 부회장까지 했던 신 씨는 공부도 잘 했다. 중학교 배치 고사에서 380명 중 20등 안에 들 정도였다. 신 씨도 공부와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부모님도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 후회 안 한다’고 늘 강조했다.
고교 국가대표 시절 모습. 신재용 씨 제공.
고교 국가대표 시절 모습. 신재용 씨 제공.

“중학교 진학했을 때 담임선생님이 운동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장학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당시 수업 시간에 잠만 자며 면학분위기를 흐리는 유도부 학생들을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난 공부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두 분야에서 모두 성적이 좋게 나오자 교사들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수업을 듣고 모자라는 것은 인터넷 강의로 보충했다. 모른 게 있으면 선생님들 도움을 청했다. 영어 수학 선생님들이 점심시간 등 틈나는 대로 체크하며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알려줬다. 유도 명문 원광고(전북 익산)에 가서도 이런 삶은 계속 됐다.

“사실 고교 1학년 때까지는 유도 명문 용인대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2학년 올라갈 무렵 축구 선수 출신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한 형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수시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개인 종목의 경우엔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하고 수학능력시험 최저등급(서울대 기준)을 맞추면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공부하며 운동을 병행했다.”
2011추계전국중고유도연맹전 고등부 남자 55kg급 결승에서 경기하고 있는 신재용 씨(위). 동아일보 DB.
2011추계전국중고유도연맹전 고등부 남자 55kg급 결승에서 경기하고 있는 신재용 씨(위). 동아일보 DB.

바로 진학부장 교사를 찾아갔다. 교사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문제는 운동부 형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선후배 ‘군기’가 세서 독자적인 행동을 못하게 하던 때였다. 1학년 땐 눈치를 보며 공부했지만 2학년 땐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4교시를 마치고 쉬다가 오후 3시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난 6교시까지 다 마치고 훈련했다. 6교시를 마치면 오후 2시50분이다. 10분 안에 훈련 준비를 하려면 다급해 점심시간에 훈련 복장으로 갖추고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 종료 종이 울리면 부리나케 뛰어가 훈련했다. 오후 6시 훈련이 끝나면 저녁 8시부터 야간 훈련이다. 저녁을 빨리 먹고 공부했다. 저녁 훈련 마치고 10시부터는 자유시간이라 새벽 1,2시까지 공부하고 잤다.”

이렇게 노력하는 신 씨를 주변 사람들도 도왔다. 유도부 감독도 흔쾌히 감독실을 내줬다.

“유도부 감독실이 컸는데 감독님은 그곳보다는 다른 교사들과 함께 있는 교무실에서 일을 보셨다. 내가 공부한다고 하니 ‘틈나는 대로 공부하라’며 열쇠를 주셨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감독실에서 공부를 했다.”
2011년 추계 전국중고유도연맹전 고등부 남자 55kg급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고 있는 신재용 씨. 동아일보 DB.
2011년 추계 전국중고유도연맹전 고등부 남자 55kg급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고 있는 신재용 씨. 동아일보 DB.

그렇게 ‘주훈야독’하며 전국대회에서 메달도 땄고 공부 성적도 유지할 수 있었다. 감독 및 교사들이 신 씨를 적극적으로 도운 배경에도 이렇게 공부와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 씨는 2013학번으로 목표로 했던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당당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에 가면 운동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교 3학년 때 국제대회에 2번 나가서 은메달만을 땄던 게 아쉬움이 남았다. 국제무대에서 애국가를 울려보고 싶은 생각에 계속 운동했다. 대학 1학년까지는 20세 이하 대회 나갈 수 있다. 선발전에서 1위를 해 세계청소년선수권에도 나갔다.”

신 씨는 2012년 체코 국제청소년대회와 아시아 유소년청소년대회에서 잇따라 은메달을 땄다. 하지만 그는 대학 1학년 때인 2013년 10월 열린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 남자 55kg급에서는 예선 탈락의 쓴맛을 봤다.
고등학교 시절 전국대회 메달을 따고. 신재용 씨 제공.
고등학교 시절 전국대회 메달을 따고. 신재용 씨 제공.

“그래도 유도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전라북도에서도 나를 계속 전국체전 대표로 선발해줬다. 전국체전은 메달 획득이 중요하다. 내가 계속 메달을 따니 전북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2015년 상무에 입대했다.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린 게 도움이 됐다. 상무의 유도 선수 선발인원이 2배로 늘었다. 2년 열심히 운동하고 제대했다.”

신 씨는 대학에서는 학내 유도 동아리나 유도 명문 학교를 찾아다니며 운동을 하고 있다.

“가급적 수업을 오전으로 배치하고 오후에 한국체대와 유도 명문 경신고를 찾아가 훈련했다. 유도는 어느 팀이나 오후 3시나 3시30분에 훈련을 시작한다. 내가 가면 모든 지도자들이 환영해줬다. 후배들과 겨루기 하며 도와주는 조건이지만 그렇게 후배들 틈에서 훈련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상무를 제대하고는 학생회 활동에 적극 나섰다.
상무시절 모습. 신재용 씨 제공.
상무시절 모습. 신재용 씨 제공.

“사실 대학 1학년 때 학번 대표로 나섰다. 어떤 직을 맡으면 더 열심히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보니 체육과 학생회, 사범대 학생회, 총학생회에서도 일하게 됐다. 2016년 말 전역할 때가 되니 2017년 과학생회장 후보가 없었고 당시 학생회장의 권유가 있어 고민 끝에 체육교육과를 잘 이끌기 위해 출마했다.”

체육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2017년 시흥캠퍼스 반대 운동을 함께 할 때 주류 세력이었던 ‘강경파’들의 지나친 독선에 반감이 생겼다. 모든 일을 방향을 정해놓고 결정하는 문화가 아쉬웠다. 그래서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다.

“총학생회 운영에 있어 난 학생들의 의견이 어떻게든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경파 위주의 총학생회는 ‘무슨 소리냐, 답은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움직였다. 전체학생 총회는 본부 점거를 위한 요식행위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흥캠퍼스 반대 운동이 격렬했던 2017년 4월 출마를 결심했다.”

신 씨가 나서자 120명의 선거운동캠프가 꾸려졌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 활동을 하며 쌓은 인맥이었다. 캠퍼스 모든 과가 총망라된 선거캠프의 도움으로 총학생회장이 됐고 2018년 한 해 동안 서울대 총학생회를 이끌었다. 신 씨는 총장 선거에서 학생의견 반영 비율을 이끌어 내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후보로 선거운동하던 때 모습. 신재용 씨 제공.
서울대 총학생회 후보로 선거운동하던 때 모습. 신재용 씨 제공.

3월 대학 4학년에 올라가는 신 씨는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등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유도와 삼보라는 운동의 끈을 놓지 않을 계획이다.

“7월 법학적성시험을 치른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체육행정가다. 스포츠 행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 법체계를 아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유도와 삼보는 이런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데 힘을 주는 원천이다.”

신 씨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유도가 있다고 믿고 있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가 힘들긴 하다. 하지만 몇 시간 씩 엉덩이 붙이고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배경엔 유도를 하며 쌓은 체력과 투지가 있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유도는 끝까지 내 인생과 함께 할 것이다.”

신 씨는 공부와 운동을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운동선수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체계상 운동선수도 공부하게 하면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해도 은퇴 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위해서도 운동선수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한다. 물론 요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일반 학생들의 운동 부족도 함께 해결해야 할 것이다.”

신 씨는 유도와 삼보를 병행하며 ‘올림피언’의 꿈도 꾸고 있다. 유도로는 올림픽 출전이 사실상 좌절됐다. 유도는 선수 층이 두터운데다 자신만의 장기도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 하지만 삼보로는 아직 희망이 있다.

“삼보는 2024년 파리 올림픽 때 정식종목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삼보를 임시 승인 단체로 인정했다. 3년 뒤엔 정식 종목 단체가 될 수 있다. 변수는 있지만 일단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목표로 하면서 삼보의 올림픽 정식종목 승인을 기다리겠다. 파리 올림픽 정식종목 결정은 2022년 결정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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