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이 개봉 3주 만에 1300만 명 관객을 넘어섰다. 그리고 2월 중순 역대 1000만 관객 영화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는 거대 마약조직을 잡기 위해 치킨가게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형사들이 졸지에 가게를 인수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렸다.
영화에서 형사들이 인수한 치킨가게는 우여곡절 끝에 투자자를 만나 프랜차이즈화된다. 투자자로 위장한 마약조직은 치킨 프랜차이즈 지점을 매개로 전국에 마약을 유통시킨다. 밀수한 마약을 치킨용 소금봉투에 넣어 배달한 것. 주문자들이 치킨을 배달 받자마자 소금봉투만 챙기고 통째로 문밖에 버리는 모습을 포착한 형사들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수사를 확대해간다.
마약조직이 프랜차이즈 치킨집 소금봉투에 마약을 넣어 유통한다는 설정은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렇게 유통했다가는 순식간에 정체가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실에서는 정부당국과 검찰·경찰 마약수사대가 불철주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마약 거래는 최대한 음성적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SNS로 아이디 유포, 90%는 사기
보통 일반인은 언론을 통해 마약 유통 방식에 대해 접한다. 대체로 마약조직이 해외에서 밀반입하다 적발돼 검거됐다는 내용이다. 일례로 석 달 전인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 마약조직 ‘성일파’ 두목 윤모 씨가 약 30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90kg을 밀수하다 적발돼 경찰에 검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해당 조직은 대만 ‘죽련방’과 일본 ‘시라가와파’ 등 3국의 마약·폭력조직과 연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어둠의 경로로 국내에 밀반입된 마약은 암암리에 전국 곳곳으로 팔려나간다. 평생 마약을 볼 일이 없는 일반인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거래되고 있다. 수도권 검찰청에서 다년간 마약 수사를 해온 수사관들에게 마약 유통의 천태만상에 대해 물었다.
최근 마약 유통은 어떤 경로로 이뤄지고 있을까. A수사관은 “몇 해 전부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마약을 거래하는 방식이 대중화됐다. 그런데 90% 이상은 사기꾼이라 돈을 받고 잠수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피해를 입어도 ‘사기당했다’며 신고할 수 없으니 피해 액수가 꽤 클 것이다. 구매자가 5번 정도 사기를 당하다 1번 성공하면 그때부터 해당 판매자와 믿고 거래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튜브에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를 입력하면 관련 영상이 뜬다. 아이디가 쓰인 종이와 주사기를 촬영해 동영상으로 올리고, 화면에 ‘도매 환영’이라고 적어놓아 무엇을 파는지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 속 아이디를 사용하는 이가 진짜 마약상인지는 알 수 없다. 수사관 역시 특별한 구별법은 없다고 했다. A수사관은 “소위 ‘진퉁’(진짜 마약 판매상)을 가려내는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에서 잡아온 마약사범을 조사해보면 첫 거래에 운 좋게 성사된 경우도 있고, 여러 번 시행착오 끝에 겨우 거래했다 잡힌 경우도 있다. 다만 SNS를 통한 마약 판매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마약수사대에 걸리지 않으려고 마약상들도 조심하는 편이다. 구매자에 대한 검증 역시 까다롭게 이뤄진다. 진퉁이라면 그런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기발한 ‘던지기’ 장소들
최근에는 익스플로러, 크롬과 같이 일반 웹브라우저나 네이버, 다음 등 검색엔진으로는 찾을 수 없는 특수한 웹을 통해 거래하는 추세다. IP 주소 추적이 불가능해 인터넷 세계의 뒷골목으로도 불린다. 폐쇄성 때문에 마약 및 무기는 물론, 아동포르노까지 유통되는데 전 세계 범죄 거래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A수사관은 “10, 20대 젊은 층이 호기심에 접속했다 거래하는 사례가 최근 급속히 늘었다. 지난해에는 다크웹으로 대마초를 구매했다 잡혀 들어온 고등학생도 더러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3년 12월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복도 수도계량기함에 열쇠를 숨겨놓으려던 주민이 검은 봉지 속 흰색 가루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었다. 흰색 가루의 정체는 필로폰 40g으로 이웃집에 사는 30대 탈북 여성이 자신의 집 계량기로 착각해 숨겨뒀다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물건이 사라지거나 일반인에게 발각되는 경우는 없을까. B수사관은 “물론 잘못하다 드러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물다. 하나같이 멀쩡한 물건처럼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공중전화 밑에 있다고 해 가보면 쓰레기처럼 뭉쳐서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테이프로 붙여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지하철 공중화장실 몇 번째 칸 양변기 물통 안에 넣어두면 일반 사람들이 일부러 열어보고 가져갈 일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담당 분야 나눠 조직적 판매
마약은 던진다고 해도 현금까지 아무 데나 던질 수는 없다. 입금에는 주로 대포통장이 이용된다. B수사관은 “입금보다 인출이 중요하다. 마약 유통은 일반 상거래처럼 결제➞배송➞구매 완료 순서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된다. 구매자가 입금하는 순간 유통책은 마약을 특정 장소에 던지고, 인출책은 바로 돈을 꺼낸다. 이 때문에 마약조직은 유인, 유통, 인출 등 담당 분야가 3개로 딱 나뉘어 있어 맡은 일만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로 수사당국에 검거되는 이들은 CCTV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유통책과 인출책이다. 노출 위험도는 둘 다 높지만 마약조직 내 서열은 인출책이 더 위라고. B수사관은 “아무래도 현금을 만지기 때문에 조직에서도 아무나 쓰지 않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담당하게 한다. 반면 마약을 던지는 사람은 대부분 잡혀 들어가도 크게 아깝지 않은, 조직에서 서열이 낮은 어린애들을 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현금 대신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마약 거래를 하는 사례는 없을까. 또 다른 수도권 검찰청 소속 C수사관은 “암호화폐는 자금 세탁용이나 해외에서 마약을 밀반입할 때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1g가량의 소량은 암호화폐로 거래하지 않는다. 또 비트코인의 경우 송수신 기록이 전부 남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송수신 기록이 남지 않는 암호화폐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사해도 거래 기록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SNS 발달로 마약사범이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6 마약류 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은 2012년 9255명, 2013년 9764명, 2014년 9984명, 2015년 1만1916명, 2016년 1만4214명 등으로 급속히 늘고 있다(그래프1 참조).
특히 온라인 마약사범 검거자는 2012년 86명에서 2016년 1120명으로 4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소통을 대부분 SNS로 하는 10, 20대 마약사범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10대 마약사범은 2012년 26명에서 2016년 91명, 20대 마약사범은 2012년 570명에서 1401명으로 증가했다(그래프2 참조).
“SNS로 급속히 확산돼 우려”
C수사관은 “10년 전만 해도 그들만의 리그였다. 일반적으로 마약 판매는 하던 사람들이 계속하기 마련이다. 이른바 ‘회전문 시스템’이다. 판매하다 감옥에 잡혀 들어가도 거기서 마약사범끼리 모여 인맥을 넓히고 나와 다시 영역을 확장해갔다. 사회에 있는 마약 유통책도 특정 조직 내 중요 인물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접견을 가 다른 인물을 소개받아 판매하는 등 기존 판로를 이어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SNS가 유통채널 기능을 하다 보니 인맥에 의존하지 않고도 판매가 수월해졌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수사관들은 마약사범 가운데 초범의 비율이 체감적으로 늘었다고 말한다. 조사해보면 ‘영화를 보고 따라서 거래해봤다’ ‘진짜 마약인 줄 몰랐다’ ‘호기심에 처음 사봤다’ 등 변명을 하지만 단순 호기심 때문에 일을 키운 사례도 많다고 한다. C수사관은 “새벽시간에 온라인 인기 커뮤니티 게시판에 ‘시원한 술 판다’고 글을 올리면 100명은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1~2명은 실제로 접속해 고객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밑밥을 마구 던져놓고 걸려드는 몇몇에게만 팔아도 장사가 되니 근절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이 합동으로 마약 수사를 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수법이 다양화되고 대상도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당국이 인력을 확충해 검거율을 높여도 마약 유통 확대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C수사관은 “단순 호기심에 마약을 접하는 것도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마약 밀수, 거래, 흡입 등 마약과 관련된 사람은 누구나 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절대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재범률을 낮추는 등 국가적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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