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을 배경으로 자식의 명문대 의대 진학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유층 학부모와 입시 전문 컨설턴트 등을 다룬 한 방송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교육 현실을 곱씹는 목소리가 커졌다.
분명 드라마는 극소수에 해당되는 스토리다. 그렇다 할지라도 부모의 돈과 정보력이 학생들의 진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우리 교육의 실제 현실. 그래서 내용이 조금 부풀려지고 과장됐더라도 공감은 컸다.
학력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줄을 짓게 하는 우리 교육 구조가 얼마나 심각한 휴유증을 남기는지 고민하는 계기도 됐다. 그렇다면 과거의 국내외 교육 체계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들이 생각하는 한국 교육의 방향은 어떠할까. 고전연구가인 신동준 21세기 정경연구소 소장으로부터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참고할 만한 교육의 관점과 방향을 들어봤다.
● 자기 충실을 위한 공부가 없다
신 소장은 드라마 내용 일부가 사실과 가깝다는 점을 전제로 우리 교육의 방향, 학교의 존재 목적이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 신 소장은 “돈과 계층의 대물림을 위한 학업과 진로 선택이 이뤄지고 있다. 공부를 하는 주체인 학생들이 무엇을 위해 학업을 하는지에 대한 설정부터가 잘못됐다”고 진단했다.
신 소장은 “공자(孔子)가 말하길 군자(君子)나 대인(大人)은 자기 자신을 충실히 하고자 공부를 하고 소인(小人)은 남을 위해서 공부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교육 구조에서 결국 내 부모의 기대, 주변의 시선, 경제적인 이익만을 좇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나 이를 묵인하고 부추기는 교육 관계자들이 의미심장하게 상기시켜 봐야 할 얘기”라고 했다.
학벌, 직업, 배경 등 소위 ‘간판’으로 사람의 능력과 인격을 평가하는 인식에서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의 능력에 따라 일정 부분 학력의 성취도나 서열이 좌우되고, 상위권에서 밀려난 중하위권 학생들은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 것에서부터 높은 진입 장벽이 생기게 됐고, 학생 개개인에 맞는 창의적, 전인적 성장 교육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러면서 교사와 제자, 학부모 사이의 관계, 교육 방법도 비정상적으로 형성됐다고 봤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는 상당히 떨어져 있고, 학부모가 교사의 운명을 쥐고 흔들거나 특정 학생의 성적 향상을 위해 비정상적으로 결탁하는 일이 빈번하다.
신 소장은 “인류 최초의 대중 교사라 할 수 있는 공자는 제자들이 속수(束脩·스승에게 인사 치례로 주는 수업료나 물품)가 없더라도 리더가 되고 ‘수기치인(修己治人)’하겠다고 하면 귀족뿐만 아니라 서인들도 다 받아줬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생산자’가 될 것인가 ‘지도자’를 할 것인가의 전문적인 영역 기준에서 제자들에게 맞는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지금은 학생-학부모-교육자의 관계가 많이 변질됐지만 유학의 오경(五經)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서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스승은 제자를 가르치며 성장하고 학생은 배우면서 진보한다고 했다. ‘가르치는 게 배우는 것, 그러면서 성장한다’는 이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순자(荀子)도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취지를 갖고 학문을 권했다”고 설명했다.
● “신숙주를 떠올려라”
“결국 신숙주 같은 사람을 발굴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 소장은 한국 교육의 방향성을 묻는 질문에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인 신숙주(1417~1475)를 떠올렸다. 신숙주는 과거 한국사에서 이론과 실무에 어학, 업무 조정 능력 등까지 두루 겸비한 인재를 꼽을 때 대표 인물로 꼽힌다. 세종 때 과거에 급제해 성종 때까지 병조·예조판서, 우찬성, 대사성, 직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안 거친 요직이 없다. 예문관(왕의 칙명과 교서를 기록, 정리하는 임무를 맡아보는 관청)과 홍문관(궁중의 경서와 사적, 문서를 관리하는 관청)의 대제학(정2품 벼슬)을 겸임하기도 했다.
신 소장은 “다독을 좋아하고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통달했던 신숙주의 과거 시험 당시 답안지는 틀에 박힌 답이 아니어서 채점관이 정성적 평가를 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문과 시험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갑과(3명)가 아닌 을과(7명)로 합격을 했을 정도”라며 “그렇지만 병서와 음양서까지 꿰찬 그의 능력은 관직 생활을 하고부터 여러 분야에서 크게 꽃을 피웠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교육에 있어서 두루 읽는 독서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단적인 인물”이라며 “결국 독서로 가까운 학문의 연구 영역을 계속 확대했는데, 주희(朱熹·1130∼1200)가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말한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이나 현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여러 이치를 잘 탐구해 완벽하게 지식을 쌓는다)를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신 소장은 “장자의 책을 읽고 ‘중간자’ 발견에 영감을 얻어 결국 일본의 최초 노벨상(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도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입시 공부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다양한 지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짧은 시간에 교과 과목에 관한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푸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 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학생들은 ‘공부 못하는 애’ 취급을 받는다. 현 교육 체계에서 학력의 핵심이 창의성 함양과 거리가 있다. 인재들이 사회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결국 획일적인 지식 잣대로 서열을 짓는 교육 평가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 교육의 왜 변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되돌아봐야 할 인물이라는 게 신 소장의 말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대학 입시 방식을 대학 자율에 맡기고, 단기적으로 대학 내에서 학부를 더 내실 있게 통합 운영하고 대학원 코스를 세부적으로 전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 소장은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취향 차이가 있다. 공자는 거일반삼(擧一反三)이라는 교육법으로 자기 주도형 학습을 권장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셋을 알아차린다는 얘기로 스스로 ‘리서치’하고 다음 것을 가르쳤다”며 “이런 교육이 돼야 폭넓은 지식과 시야로 세상을 잘 읽는 인적 자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국가 공동체와 경제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교육의 우선 목표로 전제가 돼야 한다. 교육에서 바로 이런 말을 해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신동준 소장은…
· 1956년생 · 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서울대 정치학 석·박사 ·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 도서출판 학오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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