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0시 반 경남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마을회관에서 80대 중반의 할머니 2명이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주인공은 허을순, 정순이 할머니. 두 사람은 1935년생 동갑이다. 정규 학교가 아닌 마을 한글학교 수료자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훈장(訓長)’이자 이장을 지낸 이규석 전 동아일보 국장(75)의 재능기부 결과물. 이 전 국장은 30년 기자생활에 이어 국정홍보처 차장, 토지공사 감사 등을 지내고 2012년 귀향했다. 이듬해 2월부터 한글을 몰라 불편을 겪는 어르신들에게 한글과 산수, 사회를 가르치기 위해 마을회관에 ‘한글학교’를 개설했다. 당시 학생은 74세부터 79세까지 15명. 모두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들은 ‘부끄럽다’며 외면했다.
이 전 국장은 문맹자 교육용 교재와 신문을 활용해 하루 2시간씩 수업을 했다. 학구열을 불태우며 한글을 깨치던 할머니들도 6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줄었다. 두통을 호소하거나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학업을 중단한 할머니가 여럿이고, 몇 분은 돌아가셨다.
명예졸업장을 받는 허, 정 두 할머니가 마지막 학생인 셈이다. 이 전 국장은 “두 분은 귀가 어둡고 관절 질환 등 노환이 심해 등교가 힘든데도 6년 동안 성실하게 학습을 했다. 특히 모범적인 행동으로 주민 화합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다.
이 전 국장은 지난달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에게 손수 편지를 썼다. “명예졸업장과 졸업식에서 입을 가운 두 벌을 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박 교육감은 “참 의미 있는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명예졸업장은 심현호 진주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이 전달할 예정이다.
이상재 청원리 이장은 “명예졸업장 수여식에는 주민 5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여 간단한 음식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습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TV도 켜지 않고 불편을 참아 준 마을 어르신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다. 성격이 자상하고 탁구 실력도 남다른 이 전 국장은 요즘도 옛 지수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주민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며 건강한 마을 가꾸기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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