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가수 정태춘 씨가 10년 넘게 활동하지 않은 이유를 공개했다.
정태춘 씨는 2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10년 넘게 노래를 안 만들었다. 저는 사진도 좀 찍다가. 가죽공예도 하고. 가방 같은 거 만들었다. 재미있었다"라고 말했다.
활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대중과 교감이 잘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며 "내가 가진 관심, 문제의식 이런 것들이 대중하고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앨범 두 장을 냈을 때 그것에 대한 피드백이 다음 앨범을 또 낼 수 있을 만큼 오지 않고 그랬을 때는 내 이야기가 공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데뷔 40주년 앨범을 발표한 이유에 대해선 "40주년은 올해 한 해 주위에 나를 많이 도와주고, 아껴 주고, 이렇게 함께해 줬던 사람들이 제안을 하면서 '그래, 올해 한 해는 재미있게 놀아 보자' 이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만든 노래 중 가슴에 남는 노래를 꼽아달라는 진행자 질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인데 '정동진 3' 같은 경우는 멕시코 해안와 우리 동해 해안과 이런 것들을 연결시키며 내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거고 '날자 오리배' 같은 최근의 비자나 국적도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세계 노동자들 이야기. 그리고 5·18처럼 역사적인 사건을 내 시각에서 내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그런 노래들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5·18'에 대해선 "처음엔 '잊지 않기 위하여'였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됐냐면 광주항쟁이 역사적인 의미가 정리가 되고 하면서 광주 비엔날레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비엔날레의 첫 회의 대상 작품이 '잊기 위하여'였다. 그래서 다들 '이건 아니다' 하는 이야기들을 했었다. 그러면서 안티 비엔날레가 다른 곳에서 따로 준비가 됐고, 그 안티 비엔날레의 개막식을 하면서 저한테 공연 초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잊지 않기 위하여를 만들어야 되겠다' 하고 생각을 하고 곡을 만들어서 가서 불렀다. 그리고는 앨범 제작하면서는 '5·18' 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정 씨는 '5·18'과 '북한강에서' 노래를 스튜디오에서 불렀다.
정 씨는 부당한 음반 사전 심의 제도에 맞선 인물이기도 하다. 정 씨는 "1978년 '시인의 마을'을 발표하면서 당국 심의에 걸렸다. 이건 더 이상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중음악 또는 문화사 이런 전반적인 상황 속에서 내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없애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작품을 만들 수도 없고 가수활동도 할 수가 없고. 당시로서는 피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의를 통과해 가면서 가사를 고쳐가면서 노래들을 발표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정 씨는 1993년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발표하면서 사전 심의 거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듬해 불구속 기소되고 재판까지 회부되면서 정 씨는 사전 심의 제도에 대해 헌법 심의를 청구했고 결국 위헌 판정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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