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으로 CG 배운 계약직, 야근-박봉 견디며 해외취업 꿈꿔
한밤 퇴근 회식 뒤 집에서 실족사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5층 옥상. 기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로 바닥에 흰색 스프레이로 사람이 누운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1995년생 이윤혁 씨가 생의 마지막 순간 머물렀던 자리다.
이 건물 옥탑방에 살았던 이 씨는 지난해 10월 25일 옥상 난간에서 추락해 숨졌다. 난간 높이는 고작 92cm였다. 키가 180cm인 이 씨의 허리 정도까지 오는 높이다. 건축법상 옥상 난간은 최소 1.2m는 돼야 한다. 이 옥탑방은 월세가 주변 시세보다 10만 원 정도 쌌다. 밖에서 본 옥탑방은 마치 컨테이너 박스처럼 보였다. 화장실 벽면은 나무판자로 돼 있었다. 이 씨는 평소 여자친구에게 “사람 사는 것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컴퓨터그래픽(CG) 제작회사의 계약직이던 이 씨는 사고 당일 밤 12시 반쯤 퇴근했다. 하지만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상사와 함께 새벽 3시가 넘을 때까지 술자리를 가졌다. 술에 취해 귀가한 이 씨는 아슬아슬한 난간 앞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타살 흔적이 없고 유서도 발견되지 않아 사고사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씨는 광주에서 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스무 살이던 2015년 상경해 조그만 CG업체에 첫 직장을 얻었다. 그는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는 영화 특수효과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이 씨는 밤샘 야근을 숱하게 했다. 월급은 150만 원 남짓이었다. 이마저도 제때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생활비를 대느라 택배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했다. 여자친구는 “윤혁이는 새벽까지 알바를 한 날에는 회사에 지각할까봐 곧바로 회사로 가 쪽잠을 잔 적도 많다”고 했다.
이 씨는 2017년 회사를 옮겼다. 새로 들어간 곳은 국내 유명 CG회사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흥행작의 CG 작업에도 꽤 많이 참여한 곳이다. 큰 회사로의 이직으로 이 씨는 꿈을 실현하는 데 한발 더 다가선 듯했다. 직장을 옮겨서도 이 씨는 마감이 가까워오면 1주일에 100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가 받는 월급은 208만 원이었다.
‘우물 밑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야. 우물 밖으로 나와서 맘껏 뛰어볼 거야.’ 이 씨는 사고 한 달 전 여자친구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여자친구는 “윤혁이가 퇴직금으로 비행기 삯을 마련하겠다면서 입사 2년이 되는 올해 4월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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