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허기가 질 때 달콤한 빵을 찾아요. 엄마들 생각에는 자녀가 흰색 우유를 마시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초콜릿 우유나 분홍빛 딸기우유를 찾죠. 딸기우유를 분홍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코치닐’ 색소 덕분입니다. 천연 색소로서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로 만듭니다.
몇 년 전 TV에서 딸기우유에 벌레로 만든 코치닐 색소를 넣는다는 내용이 방영돼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이후 딸기우유 판매량이 줄어들었다고 하니,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스타벅스에서는 과거 연지딱정벌레 가루를 색소로 사용하다가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판매를 중단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인공 염료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코치닐 색소가 최고급으로 애용됐습니다. 선명한 붉은색을 낼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지요. 유럽에서 붉은색은 왕권, 혁명, 악마, 욕망 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붉은 염료를 만드는 기술은 부를 축적하는 원천으로 통했습니다.
중국에서도 붉은색은 부와 행운을 상징합니다. 심지어 명마의 색깔도 붉은색, 즉 적토마를 최고로 칩니다. 과거 중국에서는 수은의 황화물을 이용해 붉게 염색을 하는 기술이 발달했어요. 중국은 붉은색으로 곱게 염색한 제품들을 서양에 수출했습니다. 또 부를 쌓아주는 염색기술을 유출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6세기 세계의 부가 중국에 몰린 이유예요. 더구나 중국은 비단이나 자기처럼, 당시로서는 최고급 물건을 수출했어요. 유럽 상인들은 이런 물건을 중국에서 사서 유럽으로 돌아가 비싸게 팔아서 돈을 벌었죠. 당시 중국의 화폐는 은이었어요. 그래서 유럽인들은 식민지를 정복할 때마다 은과 금을 착취하느라 혈안에 빠져 있었죠. 중국 물건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들 역시 식민지에서 은과 황금을 착취하려 혈안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1530년대 중반에 지금의 멕시코로 들어온 스페인 상인들이 붉은 염색의 원료인 연지벌레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540년부터 남미와 유럽 사이의 대서양 양안 사이에 연지벌레 교역이 시작됐어요.
남미의 연지벌레는 스페인의 세비야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수입됐습니다. 수입된 연지벌레는 한편으로는 터키로, 다른 한편으로는 필리핀으로 수출됐어요. 필리핀으로 들어온 코치닐은 다시 중국으로 수출되었으니 그야말로 연지벌레 무역이 세계화의 시작인 셈이에요. 연지벌레로 스페인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원주민들은 스페인인들이 가져온 질병들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이후 합성연료가 개발되면서 천연염료 교역이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에서는 또 다른 세계화 때문에 농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답니다. 멕시코 갱단들은 과거에 마약 밀매로 돈을 벌었어요. 그런데 멕시코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약 거래가 힘들어지자 다른 수입원을 찾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아보카도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치솟자 갱단은 아보카도 농장에서 돈 냄새를 맡았습니다. 아보카도 농장을 운영하면 수억 원대 수입을 올릴 수 있어요. 아보카도는 멕시코에서는 ‘녹색 금’으로 통해요. 갱단들은 농부들을 협박해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습니다. 이를 거부한 농부 일가족이 살해당한 적도 있다고 하니 심각하죠. 아보카도 농장을 둘러싸고 세력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갱단끼리 살육전까지 벌인답니다. 그런데 부패한 멕시코 정부는 갱단의 횡포를 막지 못하고 있어요.
아보카도를 둘러싼 비극이 일어나자 ‘피의 아보카도’를 메뉴에서 퇴출하는 식당들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생겼어요. 아보카도 대신에 다른 식재료를 이용하는 겁니다. 즉, 로컬푸드 운동과 제철음식을 먹으려는 시도예요. 아보카도처럼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과일을 먹으려면 먼 곳에서 수입을 해야 합니다. 자동차, 배, 비행기 등 운반 과정에서 석유가 필요하고 이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언제부터인가 일 년 내내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딸기가 생산되기 때문이죠. 겨울에 딸기를 재배하려면 석유가 필요합니다. 사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웬만한 것은 먹지도, 쓰지도, 입지도 말아야 해요. 지금 우리가 입은 옷은 베트남같이 임금이 싼 곳에서 생산한 것을 수입한 경우가 많아요. 먹고, 쓰고, 입는 모든 물건의 생산 과정에서 석유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지구온난화와 연관돼 있는 셈이에요.
아보카도 때문에 죽어가는 멕시코 농민도 살리고 온실가스도 줄이고 경제도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윤리적 소비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커피나 초콜릿의 경우 공정한 노동의 대가와 인간다운 근무 환경을 제공하면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하는 ‘공정무역’이 바로 그 예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연을 덜 오염시키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유기농으로 재배하거나 열대림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한 농작물을 수입하는 것이죠.
만약 전 세계 아보카도를 소비하는 나라들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멕시코에서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아보카도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고 줄어드는 것에 대한 대책을 세우다 보면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보카도 수출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설 것입니다. 그러면 멕시코 정부도 변화시키려 노력할 거예요.
카카오나 커피도 비윤리적으로 생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국제적인 노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인이 공존해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해가며 서로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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