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을 맞은 3·1절 당일, 서울 도심은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시민들과 태극기의 물결로 가득 찼다. 1일 오전부터 정부는 물론 각종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행사가 열리며 시민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반면 꾸준히 태극기를 걸고 진행해왔던 보수단체들의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요구 등의 집회도 이날 서울 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를 걸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양 쪽으로 나뉜 것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등의 주최로 ‘강제징용노동자상 합동 참배 행사’가 열렸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기 위한 자리다.
행사에는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직접 참석해 “3·1절 행사에 이렇게 모여주시니 무한한 감사와 눈물이 나온다. 제가 갑자생이라 내년이면 100살이다. 오늘 같은 날 초대해 주시니 대단히 고맙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희자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또한 “어르신(이춘식 할아버지)이 하실 말씀이 많으신데 고맙다는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다고 하신다. 가장 슬픈 것은 함께 투쟁하고 재판 받은 동료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라며 “100주년을 맞이해 새삼 새로운 정신으로 새출발하는 투쟁 정신을 담을 것이고,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후세들에게 아픔의 흔적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겨레하나 단원들과 함께 참석했다는 고등학생 문혁(17)군은 “강제징용에 대해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많이 알아보고 이런 행사에 참석하면서 남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며 “(배상 문제 등에) 참여하고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오전 11시께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3·1절 기념식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는 2만여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석했다. 행사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도 미리 설치된 스크린 앞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모여들어 의미있는 날을 함께 기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각자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들고 흔들며 이 장면을 감상했고, 댕기머리를 하고 한복을 입은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가족 단위로 참석한 시민들도 많았다.
아내, 두 딸과 함께 서울 양천구에서 왔다는 김선국(62)씨는 “그간 우리나라 기득권에 친일파가 많았고 청산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며 “다른 지역에서 흩어져 진행하는 것보다도 서울 중심지에서 정권 차원으로 행사를 여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졸라 참석했다는 박진우(12)군은 “역사를 좋아하는데 책을 보고 유관순 열사님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아직 학교에서 배운 부분은 아니지만 역사책을 보고 관심이 생겼고 올해가 100주년이라 부모님께 부탁해 파주에서 오전 9시부터 왔다”고 말했다.
행사의 절정은 참가자들이 다 함께 만세 삼창을 외치는 순간이었다. 스크린으로 보던 시민들도 일제히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세 번 외쳤다. 시민들의 입가에는 일제히 미소가 피어올랐고 만세를 마치자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가족과 함께 온 이들은 서로 껴안기도 했다.
3·1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도 오후 2시께 광화문 광장에 모여 행사를 열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영상을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100년 전 깊은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어났다.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무자비한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서,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족 생존을 이뤄냈다”며 “이는 백년의 세월을 살아남아 우리 육체에 깃들어 있다. 수많은 희생들을 기린다”며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했다.
김 대주교는 “어제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고 획기적인 기회와 변화가 있길 바랐으나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며 “우리 민족은 한반도 평화를 우리 힘으로 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길 바란다. 3·1 정신에 따라 민족이 단합해 희망의 다리를 놓는 데 국민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반면 오후에는 이와 다소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등을 요구하는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집회가 열린 것이다.
서울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운동본부가 주최한 ‘100주년 3·1절 기념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현장에서는 3·1 독립선언을 소개하는 영상에 뒤이어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부당성을 알리는 내용의 영상이 재생됐다.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현장에 찾아와 “100년 전 한국을 빼앗겨 주권을 찾겠다며 분연히 일어난 자랑스러운 선배들을 기억하느냐. 오늘날 우리도 좌파정권에 빼앗겨 위태로운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며 “대통령을 탄핵하고 투옥한 이 정권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외쳤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또한 집회를 열고 개회사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고마움을 잊었는지 안타깝다”며 “미국을 떠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집회에 참석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벌써 태극기 (집회를 한 지) 세 번째 3·1절이다. 애국 시민 여러분들이 길에서 고생하고 계시다”며 “한국당에 입당하신 분들은 실패했다고 떠나지 말고 지켜달라. 언젠가는 우리가 이길 것이고 이 땅에는 진실과 정의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날 태극기 집회에도 2000여명이 넘는 시민이 참석해 태극기를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는 정모(71)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독재하니 애국심 때문에 나왔다”며 “3·1절은 나라의 자유를 위해 국민들이 나선 날이니 모두 같이 이런 행사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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