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범법자가 된 부모들…“양육비 받을 수만 있다면”

  • 뉴스1
  • 입력 2019년 3월 3일 08시 23분


‘배드파더스’에 신상공개…피소되는 사례도 잦아
양해모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합법화하라”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양육피해 부모 모임인 양육비 해결 모임(양해모). /뉴스1 DB © News1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는 양육피해 부모 모임인 양육비 해결 모임(양해모). /뉴스1 DB © News1
##박혜진씨(39·여)는 신상공개로 양육비 문제를 해결했다. 연락을 피하던 전남편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 ‘배드 파더스’에 이름이 오른지 며칠 만에 연락이 왔다. 전남편은 양육비와 위자료 4000만원을 지급하고 신상을 내렸다. 박씨는 “전남편이 합의과정에서 명예훼손, 정보통신법 위반으로 고소 준비를 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송모씨(44·여)는 입양한 딸의 친모에게 고소를 당했다. 송씨와 재혼한 남편이 데려온 딸이 자신의 친모를 ‘배드 파더스’에 제보했다. 친모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송씨를 고소하고 1억6000만원 상당의 정신적 피해보상 위자료 청구했다. 송씨의 딸은 친모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자해를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범법 소지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같은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씨는 “법원에서 양육비 조정을 받고도 3년 넘게 한 푼도 못받았다”며 “어쩔 수 없는 최후수단이었을 뿐”이라 항변했다.

박씨와 송씨가 이용한 ‘배드 파더스’는 ‘아빠의 초상권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내세우고 지난 2018년 7월 개설된 사이트다. 25일 현재 배드파더스에서 신상을 공개 중인 양육비 미지급자는 지난달까지 남자 155명, 여자 16명 등 총 171명이다.

배드 파더스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구본창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 대표는 “하루 방문자가 약 7만 명이고, 신상공개 6개월 만에 81명의 양육비 문제가 해결됐다”고 전했다.

구 대표는 뉴스1과 통화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정보통신법 위반 등의 혐의로 13건의 소송을 당했지만 계속 도울 것”이라며 “무엇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우선 아닌가”라고 말했다.

◇강제력 없는 양육비이행법…“사법적 제재조치 강화 해야”

일부 부모들이 범법 소지가 있음에도 ‘사적 제재’인 신상공개에 매달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양육비 이행 관련 법안의 구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4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을 제정하고 양육비이행관리원을 뒀지만 양육비이행법으로 양육비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양육비이행관리원 개원 이후 2018년 10월까지 이행의무가 확정된 1만872건 중 실제 이행 건수는 3515건으로, 이행률은 32.3%에 불과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육비 조정 판결에 따르지 않아도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취할 수 있는 강제조치수단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양육비 이행률을 높일) 사법적 제재조치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공익성 있는 신상공개” VS “개인의 인격권 침해”

우리나라는 두 가지 신상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원에서 신상정보 고지 명령을 받은 성범죄자를 공개하는 ‘성범죄자 알림e’와 3년간 2회 이상, 3000만원 이상 임금체불을 저지른 사업주를 공개하는 ‘체불사업주 명단공개’다.

양해모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이준영 변호사는 “성범죄자 신상공개, 임금체불 고용주 신상공개 때도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위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며 “양육비를 받지 못한 양육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다른 신상공개에 비해 절대 낮지 않기 때문에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신상공개 역시 가능할 거라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신상공개는 과도한 대안”이라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범죄행위로 형법을 위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개인간의 민사 문제인 양육비 갈등을 두고 일일히 신상공개한다는 것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도가 더 크다고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경근 아주대 로스쿨 교수 역시 “법리적 관점에서는 신상공개가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양육비는 중요한 문제지만 법규정 상으로는 ‘애를 키우는 사람’이 ‘애를 키워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 돈을 청구하는 일반적인 채권”이라며 “심정적으로는 찬성하지만 뒷받침할 법리가 없어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 ‘면허 취소’, 호주 ‘출국금지’, 독일 ‘징역형’

양해모는 지난달 14일 헌법재판소에 양육비 제도에 관한 진정입법부작위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진정입법부작위는 입법자가 헌법상 입법 의무가 있는 사안에 입법하지 않는 경우 제기하는 헌법 소원이다.

양해모 측은 이날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로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권인 기본권 침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양해모 측 변호인인 이준영 변호사는 “한국은 양육비 제도가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다”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교육비에 제대로 돈을 쓰지 못하기에 가난의 대물림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변호사는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신상공개, 운전면허 취소, 출국금지, 대지급제 등 (사법적 제재) 내용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해 사법적 제재 조치를 취한다. 캐나다나 미국은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한다. 호주와 캐나다는 출국금지조치를 내린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최장 2년, 독일은 최장 3년의 징역형을 부과한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명단을 공개하고 운전면허정지, 출국금지 등 제재조치를 강화하도록 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양해모 측은 “법이 방치하던 문제를 배드 파더스가 해결해줬다”며 “신상공개 합법화를 통해 사적 복수를 멈추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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