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 거예요.”유고은 씨(19·여)는 학창 시절 반장이었다. 유 씨가 반장 선거에 출마한 건 취직 때문이었다. 그가 다니던 특성화고에서는 교사가 써 주는 추천서가 취직에 꼭 필요했다. 교사와 친하게 지내는 학생이 좋은 추천서를 받을 확률이 높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유 씨는 담임선생님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자기소개서 첨삭이나 추천서를 작성해 주는 사람이니 항상 잘 보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원서를 쓰고 난 후에는 관계가 서먹해졌다. 유 씨는 “원서를 내고도 계속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2000년생은 인간관계에서 계산이 빠르다. 어른을 대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도 실리를 중시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인(人)코노미스트’라고 부른다. ‘사람(人)’과 ‘이코노미스트(economist·경제 전문가)’를 합친 말로, 사람을 만나 감정과 시간을 들여 얻는 이익이 자신이 혼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큰지를 따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 2000년생, 필요 없어진 관계는 ‘손절’
“요즘 애들은 가면 쓴 것 같아요.”
서울 A고교에서 근무하는 조모 교사(58)는 요즘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다. 조 씨는 ‘아이들에게 교사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대입이란 필요 때문에 억지로 교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2000년생은 불만을 직접 표시하지도 않는다.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다. 올해 서울공고를 졸업하고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입사한 변지수 씨(19·여)는 고교 시절 교사로부터 급식 줄을 잘못 섰다는 이유로 크게 혼난 기억을 떠올렸다. 변 씨는 “줄을 잘못 선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억울했다”면서도 “그래도 선생님께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교사와 얼굴 붉혀 좋을 일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들은 감정 정리도 혼자 한다. 경기지역 A고교 김모 교사는 언제나 웃으며 자신을 대하던 제자가 쓴 일기장을 우연히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학생부에 무슨 멘트를 쓸지 얘기했는데도 안 넣어줬다. 대학 떨어지면 선생 책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 씨는 “언제나 웃으며 ‘네’라고 답하던 제자여서 더 놀랐다”면서 “직접 얘기했으면 오해를 풀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2000년생은 필요가 적어진 관계는 쉽게 ‘손절’한다. 제2외국어 등 ‘비수능’ 과목 교사들은 대학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학생부 제출이 마감되는 3학년 1학기 이후에는 ‘찬밥’ 취급을 받는다. 이전까지는 밝게 인사하던 아이들이 2학기부터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북의 모 대학에 진학한 강병민 씨(19)는 “학생부 제출이 끝나니 더 이상 선생님에게 거짓으로 친하게 대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 익명으로 정보와 취향 공유
X세대 등 이전 신세대는 ‘피 끓는’ 스무 살 때 만난 친구와의 우정과 연대감을 무척 중시했다. 하지만 언제든 온라인으로 친구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난 2000년생은 다르다. 이들은 마음 맞는 친구를 찾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보다는 그럴 필요가 없는 온라인을 통해 관계를 즐긴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성비’를 중시한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동영상인 ‘브이로그’가 인기를 끄는 것도 가성비를 중시하는 2000년생들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이전 신세대가 친구들과 모여 함께 공부했다면 2000년생들은 공부하는 모습을 촬영한 브이로그를 틀어놓고 공부한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박성은 씨(19·여)는 “시간을 내고 장소를 정하고, 친구를 만나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영상 속 모습을 보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경기 군포에 사는 문모 씨(19)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TV로 보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본다. TV로 보면 가족이든 친구든 옆에 있는 사람과 자꾸 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 씨는 “누가 말 거는 게 귀찮다”며 “혼자 영상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실리를 중요시하는 2000년생의 특성이 인간관계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실적으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을 구분해 대한다는 것이다.
반면 2000년생의 이런 특징은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에 적합한지’를 자주 생각하는 과정에서 개성이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2000년생은 ‘소량 품질생산’의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라며 “각자에게 맞는 개성을 발휘할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 [소통&20]‘취조’하듯 쏟아내기보다 SNS처럼 주고받는 대화를 ▼
Q. 2000년생 조카와 친해지고 싶어서 이것저것 묻고 관심을 표현하는데, 그럴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정(情)이 안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40대 직장인 장모 씨)
A. 2000년생은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겪은 탓에 사람을 사귀는 데 소모되는 시간과 감정까지 효율적으로 쓰려는 심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대는 불편한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차라리 혼자를 택합니다. ‘혼밥’이 대표적이죠.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을 접한 ‘모바일 네이티브’인 이들은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도 별로 외로워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소통하고 즐길 거리가 충분하거든요.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조언했어요.
“기성세대가 온라인은 피상적이라고 얘기해봤자 별 의미가 없죠. 이들에겐 온라인은 실제 존재하는 현실 그 자체예요. 기성세대도 온라인 소통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소통이 상호적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이고 유튜버들도 시청자들과 실시간 댓글로 소통하죠. 여기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대화하자면서 이것저것 캐물으며 자기 말만 늘어놓으면 ‘꼰대’로 찍히기 십상이죠. 기성세대는 먼저 자신들의 표현 방식이 요즘 세대에겐 부담이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취업 준비는 잘되니’ ‘연애는 하니’와 같은 질문은 의도가 선해도 ‘취조’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요즘 세대들도 기성세대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 노력해야 합니다. 설사 직장 상사가 꼰대일지라도 꼰대의 방식대로 소통하려고 애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불쑥 ‘교수님 밥 먹어요’라고 얘기하거나, 격식 없는 이메일을 받으면 여전히 낯설지만, 먼저 다가와 호감을 표현하는 그들의 방식으로 이해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해법은 ‘진정한 대화’예요.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져서 자꾸 질문하는데 그러면 안 돼요. 대화에 능숙하지 않다면 운동, 이벤트처럼 몸으로 함께 활동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세요.”
※ 동아일보는 2000년생이 부모나 교수, 선배 등 기성세대와 사회에 하고 싶은 한마디를 듣기 위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open.kakao.com/o/gysTE7gb)을 개설합니다. 카카오톡 검색창에서 ‘2000년생 한마디 발언대’를 검색하면 됩니다. 누구나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 ▽정책사회부 김호경 조유라 기자 ▽사회부 홍석호 김은지 이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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