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향토사학자 심정섭 씨, 통제상황 보여주는 문서 공개
전쟁물자 수탈 위해 관혼상제 훼손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6일 일제가 태평양전쟁 시기에 신랑과 신부의 혼례복으로 비단옷은커녕 무명베로 만든 옷조차 입는 것을 통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명서를 공개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조선시대에도 혼례는 가장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혼례복으로 신랑은 관복을, 신부는 왕족·관료부인의 의복인 원삼·족두리를 입었다. 평민도 혼례 때는 비단으로 된 궁중예복을 착용했다. 하지만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강행하기 위해 혼례복으로 비단옷은 말할 것도 없고 무명옷을 입는 것까지 통제했다. 한반도에서 전쟁 물자를 수탈하기 위한 착취의 일환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광주지역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76)는 6일 일제가 혼례복으로 무명옷까지 통제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문서를 본보에 공개했다. 증명서라고 쓰인 이 문서에는 1942년 9월 1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주민 고모 씨가 아들 혼례에 사용할 무명베(면포)를 다른 물품보다 먼저 배급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증명서는 가로 16cm, 세로 23.5cm 크기의 얇은 종이다. 증명서에는 신랑과 신부의 주소, 나이, 혼례 시간과 장소, 혼례에 사용될 무명베 수량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고 씨는 증명서를 통해 이장과 면장에게 결혼용 무명베를 우선 지급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최연우 단국대 전통의상학과 교수(50)는 “우리 민족은 혼례나 상례 때에는 가장 좋은 옷을 입었지만 일제는 전쟁물자 확보를 위해 각종 조직을 활용해 강압적으로 좋지 않은 옷감을 착용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논문을 통해 삼베수의는 조선총독부가 의례준칙을 공포하면서 확산됐다고 밝혔다. 품질이 좋지 않은 삼베수의로 조선인들의 정신을 격하시키고 비단 등의 물자를 수탈했다고 했다. 특히 일제가 혼례나 상례에 고급 옷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은 노동력 착취 의도가 감춰져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공개된 증명서를 보면 일제가 혼례복도 통제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제는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해 우리의 관혼상제(冠婚喪祭) 전통을 지속적으로 훼손했다. 심 씨는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다른 문서들도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는 면화를 생산하는 조합원에게 주는 면장조합원증서(1920년), 전남 순천시 면화재배 통지서(1942년), 전남 영암군에서 발급한 면화 공출 명령서(1943년) 등 4장이다. 문서들은 일제가 군수품으로 면화 생산에 집요하게 매달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전시 총동원체제에 돌입한다. 또 태평양전쟁 직전인 1940년 각종 관변단체와 민간단체를 망라한 국민총력조선연맹을 조직해 한반도 착취에 혈안이 됐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전쟁물자 확보를 위해 더 혹독한 착취를 했다. 혼례나 상례를 통제해 돈과 노동력이 전쟁물자 생산에 투입되도록 했다. 심 씨는 “일제가 군복을 만들기 위해 한반도의 면작물을 통제해 신랑과 신부가 무명옷조차 입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증명서 등은 인륜지대사인 혼례식에 무명옷마저 입기 힘들었던 우리의 고단했던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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