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신입생 이승희 씨(19·여)에게 TV는 그저 ‘가구’다. 직접 TV를 켠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넷플릭스’로, 야구중계는 포털 앱에서 본다. “넷플릭스는 하루 10시간을 내리 본 적도 있어요.”
삐삐와 피처폰을 먼저 접한 기성세대에게 스마트폰이 전화기와 컴퓨터를 합친 혁신적인 정보통신 기기였다면 2000년생에게는 그냥 스마트폰일 뿐이다. 2000년생들은 스마트폰으로 놀고먹고 공부하고 사람도 만난다. ‘폰연일체(Phone然一體)’ 경지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24시간을 사는 자신들을 이렇게 일컫는다.
#폰은쉬운데 #컴퓨터는어려워
박소은 씨(19·여)는 열 손가락으로 치는 키보드 자판보다 엄지만 쓰는 스마트폰 터치 입력 속도가 더 빠르다. 박 씨는 “PC를 쓸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2000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2000년생은 대부분 생애 첫 휴대전화로 스마트폰을 썼다. 전문가들이 ‘모바일 네이티브’ 첫 세대로 2000년생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으로 전화기를 표현할 때 엄지와 약지를 뻗어 수화기를 묘사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손바닥을 평평하게, 즉 스마트폰 형태를 만들어 귀에 댄다.
대학생 정바다 씨(19·여)는 평소 연락을 주고받을 때 카카오톡을 쓰지만, 급한 연락이 필요하면 페이스북 메신저를 사용한다. 페이스북 메신저에서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어서다. 그래도 메시지를 읽지 않으면 전화를 건다. 누구나 쓰는 앱도 2000년생은 상황에 따라 세밀히 구분해 사용한다.
#영상이대세 #유투브VS틱톡
대학생 이주현 씨(19·여)는 궁금한 게 생기면 유튜브에서 검색한다. “포털사이트에서 맛집을 검색해도 협찬 받은 걸로 의심되는 글이 많지만, 유튜브에서는 생생한 표정까지 볼 수 있어 협찬인지 진짜 맛집인지 바로 알 수 있거든요.”
요즘 세대가 스마트폰으로 얻는 정보 상당수는 문자가 아닌 영상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콘텐츠가 영상이기 때문이다. 가장 핫한 동영상 앱은 무엇일까? 유튜브 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10, 20대들은 ‘틱톡’을 꼽는다. 중국 기업이 만든 틱톡은 출시 3년 만에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8억 건을 기록했다.
유튜브와 가장 큰 차이는 영상의 ‘길이’다. 틱톡 영상은 단 15초다. 그럼에도 댄스 영상 뿐 아니라 생활정보, 요리법 등 정보성 영상도 늘고 있다. 15초짜리 영상에서 요즘 세대는 재미와 정보를 모두 얻고 있는 셈이다. 제일기획의 디지털 마케팅 자회사인 ‘펑타이코리아’ 최원준 지사장은 “최근 넷플릭스에 10분짜리 다큐멘터리도 나왔다”며 “콘텐츠 길이가 짧아지는 건 세계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과의존 #그래도2000년생이미래
1980, 1990년대 생이 ‘엄지족’이었다면 요즘 세대는 엄지와 검지를 동시에 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동시에 영상에 달린 댓글창을 확인하고 쓰려면 엄지만으로는 벅차기 때문이다. 엄지로 좌판을 치면서 검지로 스크롤을 움직인다.
신세대가 줄임말을 즐겨 쓰는 것도 이런 소통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카톡단체방처럼 동시에 수십 개의 메시지가 오고갈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면 내용은 짧을수록 유리하다. ㅇㅈ(인정) 등 거의 모든 줄임말과 신조어는 다섯 글자를 넘지 않는다.
최근 ‘90년생이 온다’, ‘요즘것들’ 등 지금 20, 30대를 분석한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그 대상이 2000년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들의 사고, 소비, 취향이 가까운 미래에는 대세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이들을 관찰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2000년생은 쉴 틈 없이 새로운 것과 타인의 생각을 접하다보니 이전 세대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부족해 자존감이 약한 편”이라며 “이런 단점을 메운다면 4차 산업혁명이 보편화될 미래사회에 가장 잘 맞는 세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할많하않’ ‘커엽다’ 무슨 뜻?…자녀와 소통 어떻게하면 될까요 ▼
Q. ‘할많하않’ ‘커엽다.’ 2000년생 제 딸이 자주 쓰는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통 모르겠는데 딸은 편하고 재밌다면서 씁니다. 어떻게 하면 잘 소통할 수 있을까요(40대 주부 이모 씨).
A. ‘할많하않’은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입니다. ‘커엽다’는 ‘귀엽다’라는 뜻으로 ‘커’와 ‘귀’가 비슷하게 생겨서 대신 사용한 것입니다.
2000년생에게 ‘신조어’는 한글을 이용한 일종의 놀이문화입니다. 길지 않은 단어도 앞글자만 따 줄이고, 게임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쓰는 용어를 현실에서 쓰기도 하죠. 젊은 세대는 줄임말이나 한글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의적이고 한글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때문에 ‘우리말을 아껴야 하니 바르고 고운 말을 쓰자’고 훈계한다면 이들과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기성세대가 신조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취재팀이 만난 안모 씨(19)는 “형(21)에게 ‘혼코노’(혼자서 코인 노래방 간다)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20대여도 관심이 없으면 알아듣기 힘듭니다. 신조어는 금방 생기고, 금세 사라집니다. 인터넷 초창기에 유행했던 ‘방가방가’ ‘하이루’ 같은 말을 이제 쓰지 않는 것처럼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00년생들이 쓰는 말을 따라해야할까요?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언합니다. “요즘 세대는 자기들이 쓰는 신조어를 기성세대가 쓴다고 해서 소통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오히려 정치인이 신조어를 쓰기 시작하면 사어(死語)가 됐다고 여깁니다. 기성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경청’이에요.” 소통은 어떤 단어를 쓰냐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 동아일보는 4~8일 ‘2000년생이 온다’ 시리즈를 연재하며 카카오톡오픈채팅방(open.kakao.com/o/gysTE7gb)을 개설해 2000년생들이 기성세대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2000년생들은 “많은 부분 공감이 된다”, “어른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조언을 해주지만 시대와 안 맞는 말이 많다” “우리를 제대로 이해해 달라”라는 등의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섣불리 신세대를 규격화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성세대들도 오픈채팅방을 찾아 ‘신세대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자신을 ‘2000년생 아들을 둔 엄마’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아들에게 잔소리와 참견을 하면서도 꼰대맘은 되기 싫어 답답했는데, 기사가 도움이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앞으로도 청년들과 기성세대와의 소통, 청년들의 꿈과 도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기획보도를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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