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조업체 사장인 A 씨는 해외 거래처에 돈을 보낼 때 항상 ‘넘치게’ 송금했다. 그러면 해외 거래처는 외국에 살고 있는 A 씨 가족에게 실제 거래액을 뺀 나머지 돈을 전달했다. 거래처는 심부름의 대가를 챙겼다. A 씨 가족은 이 불법 송금액으로 외국의 부동산을 사거나 보석을 구입했다. 심지어 회사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썼다. 회사 금고를 사금고처럼 이용한 셈이다.
#2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B 씨는 자기 명의로 된 법인 소유의 100억 원짜리 건물을 자녀에게 30억 원에 팔았다. 해당 건물은 B 씨 개인 소유 땅에 있었고 명목상 건물주였던 법인은 B 씨에게 임차보증금 조로 30억 원을 내고 있었다. B 씨는 새로운 건물주인 자녀에게 이 임차보증금(30억 원)을 돌려줬다. 자녀는 이 돈으로 건물대금을 치렀다. 100억 원짜리 건물을 무상으로 증여한 셈이다.
국세청은 7일 중견기업 사주 일가와 부동산 임대사업자 등 ‘대자산가’ 95명을 대상으로 동시 세무조사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승희 국세청장이 1월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고소득층의 해외자산 은닉을 통한 사치생활 등 공정사회에 반하는 탈세행위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들 개인 대자산가는 그동안 대기업에 비해 감시망이 소홀한 틈을 타 변칙적인 방법으로 탈세해 왔다고 국세청은 보고 있다.
이번 조사 대상은 중견기업 사주 일가 37명, 부동산 임대·시행업자 10명, 자영업자·전문직 48명이다. 개인별 재산 소득자료와 외환거래 등 금융정보, 사주 일가의 해외 출입국 현황, 고가 미술품 구입 명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탈세가 의심되는 이들을 추렸다.
이들이 보유한 재산은 총 12조6000억 원으로 1인당 평균 1330억 원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주식이 1040억 원으로 가장 많고 부동산 230억 원, 금융재산 60억 원 순이었다. 재산이 100억∼300억 원인 사람이 41명으로 가장 많았고 50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도 9명으로 집계됐다. 업종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건설업이 대부분이었고 대형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업 종사자도 3명 포함됐다.
대자산가들은 주로 자녀 명의로 법인을 만든 뒤 재산을 빼돌리는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기업 대표가 회삿돈을 자녀 명의로 된 법인에 투자금 대여금 등으로 넘겨 자녀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식이다. 회사가 개발한 기술을 사주 이름으로 특허 등록한 뒤 다시 회사가 특허권을 비싸게 사오는 방식으로 탈세한 사례도 있었다. 해외에 수출할 때 친인척 이름으로 유령회사를 세워 거래 중간에 끼워 넣고 수십억 원의 통행세를 낸 업체도 국세청의 감시망에 걸렸다.
국세청은 조사 결과 탈세 사실이 확인되면 세금을 추징하는 동시에 검찰에 고발한다.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거래와 횡령, 배임, 분식회계 등 위법행위는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유관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민 누구나 정당한 세 부담을 나눠 져야 한다”며 “과세 기간을 최소화하는 기업 세무조사와 달리 대재산가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 전반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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