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상향식 교육… 과정의 즐거움 통해 ‘엔드 포인트’의 기쁨 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2일 03시 00분


INTERVIEW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
피터 토스카노 총교장(교육학 박사)

피터 토스카노 총교장이 지난달 21일 SJA 제주 교장실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발전시켜야 할지 고민해주는 교육을 우선 강조하고 있다. 총교장은 “학생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할 기회를 얻는 교육 분위기에서 창의성, 혁신, 자율성의 정신이 올바르게 형성되길 바란다”고 했다. SJA 제주 제공
피터 토스카노 총교장이 지난달 21일 SJA 제주 교장실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발전시켜야 할지 고민해주는 교육을 우선 강조하고 있다. 총교장은 “학생들이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할 기회를 얻는 교육 분위기에서 창의성, 혁신, 자율성의 정신이 올바르게 형성되길 바란다”고 했다. SJA 제주 제공
우리 교육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할 때마다 항상 미국식 교육이 모범 사례, 배워야 할 시스템으로 언급이 된다. 제주영어교육도시 내에 설립된 첫 번째 미국 국제학교로 2017년 10월 개교한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제주)는 미국 교육의 흐름을 잘 반영한 학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학교는 176년 전통 미국의 명문 사립 고교다. SJA 제주에서는 유치부(만 3세 이상), 초등부(1∼5학년), 중등부(6∼8학년), 고등부(9∼12학년) 등 총 4개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62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곳은 한국의 학교 모습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제주로 날아가 피터 토스카노 총교장을 만났다. 학교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에 앞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고민하고 있다는 그의 첫말부터가 신선하게 와닿았다.

학교 다니는 재미, 그것이 시작이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에게 “학교 다니기 어때”라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힘들다”는 답이 돌아온다. 학교라는 이름만 들어도 부담과 스트레스가 크다. 전문가들은 국내 학교 시스템이 학생들의 성장 지원보다는 수업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는 점에 대부분 공감한다. 학력으로 줄을 세우는 구조에서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 학생들에게는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동기 부여가 안 된다. 토스카노 총교장은 학교의 존재 이유부터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다.

―학생들의 표정이 밝다.

“밖에서 만나는 SJA 제주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 다니기 즐겁다’고 말한다. 학교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미국의 학교는 종합적으로 학생들에게 접근한다. 지적인, 교육적인 부분 외에도 심리, 정서 영역에서의 발달도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면에서 점점 향상되는 성취를 느끼게 해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를 하던 도중 토스카노 총교장은 1995년 부산에서 1년간 30여개 공립학교에서 영어 강의를 할 당시에 느낀 기억을 꺼냈다. 토스카노 교장은 “한국 학교는 학생들이 교실에 머물고 교사들이 움직여서 신기했다. 미국은 반대로 학생들이 강의에 따라 이동한다. 학급 친구가 고정된 한국 학교에서 교우 관계 역시 일종의 스트레스로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학교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특별한 포인트가 있을 것 같은데…

“과정 중심의 교육을 추구한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하향식(Top-down)이 아닌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상향식(Bottom-up) 수업을 지향해 가능한 한 학생들이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상향식 수업을 통해 얻는 것 무엇인가.

“학생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거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학생들은 본인이 주제를 선택하고 이를 탐구하는 기회를 얻는다. 어제는 지구 온난화, 오늘은 나비 등,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관심사를 따라가는 교육을 진행한다.”


○ 흥미와 강점을 동시에 살려 ‘야무진’ 전문성으로…


SJA 제주에서는 학생들의 흥미와 강점을 동시에 살핀다.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관심사도 듣고 어떤 분야에 능한지 파악하면 학생 개개인의 진학 학교와 전공에 대한 계산이 선다.

이런 스펙트럼하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찾은 관심 주제에 대해 교사에게 조언을 받고 혼자 연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된다. SJA 제주에서는 본교 12학년만 운영하는 심화 교육 과정인 캡스톤(Capstone) 프로그램을 도입해 초등부에서 고등부까지 마지막 학년(5, 8, 12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해당 학년 학생들은 전체 교과 과정에서 얻은 종합적 지식과 학습 능력을 활용해 특정 주제 선정부터 연구, 분석을 통한 실질적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중학교 졸업반인 8학년 때는 학생들이 직접 ‘스타트업(혁신형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초기 창업 기업)’의 대표로 제품 혹은 서비스를 개발하고 성공 가능성, 지속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보는 캡스톤 프로그램도 경험한다.

―대학 이전에 특정 관심 분야를 집중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SJA 제주를 졸업하면 한국 학력이 인정되는데, 여기에 더해서 특정 분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증명을 남기고 싶다.”

토스카노 총교장은 이 대목에서 “리서치(연구)”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기에 연구 경험과 향후 발전 가능성 일체를 ‘포트폴리오’로 만들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지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미국의 교육, 입시 경향(트렌드)이라 할 수 있나.

“최근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예일 등의 대학에서 학생 선발 때 ‘연구’ 능력을 아주 중요하게 판단한다. 캡스톤은 학생들이 심도 있게 주제 탐구를 하고, 학우들 앞에서 발표하는 프로젝트다. 작년에 본교에 방문했을 때 시니어 캡스톤(12학년)을 볼 수 있었는데 인상적인 사례가 있다. 한 중국인 학생 얘기다. 이 학생은 아버지가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었는데, 공장 설비를 개선한 기계를 캡스톤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고 특허까지 제출했다. SJA 제주에서도 내년 36명의 1회 졸업생이 시니어 캡스톤을 하게 되는데 무척 기대가 크다.”

토스카노 총교장은 학생들이 특정 관심사나 이슈에 대해 실질적이고 창의적 연구 경험을 쌓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접하고 혁신되길 원한다. 그의 교육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캡스톤 프로그램과 연계해 본교에서도 진행하지 않는 ‘아카데믹 콘센트레이션’이라는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내고 고등부에서 시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학에서 전공 관련 과목을 집중적으로 신청하는 것과 유사한데…

“고등부 학생들에게 관심 과목을 집중적으로 수강하게 하는 거다. 예를 들면 생물학, 화학, 물리학, 환경 과학 등과 같은 특정 분야의 과목을 집중해서 들으면 수료증을 주는 것이다.”

SJA 제주에서는 고등부 4년간 대학처럼 심화 학습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블록 스케줄’ 프로그램이 기존에 있다. 한 학년을 두 학기로 나눠, 학기마다 4학점을 신청해 이수할 수 있다. 4년 동안 8학기에 32학점 신청이 가능한데 28학점이면 졸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남는 4학점을 관심 심화 학습 과목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말 한 우물을 제대로 파게 만드는 아이디어다.

“대학 입학 때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학, 예술, 수학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링 분야로 넓히려 한다. 여기서 한 가지를 정해 ‘아카데미 콘센트레이션’을 진행할 경우, 시니어 캡스톤 주제도 동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한 분야에서 확실한 전문성과 정통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학생의 미래와 함께 가는 ‘엔드 포인트’

“‘커리큘럼’은 계속 변화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성취하느냐죠.”

토스카노 총교장이 말하는 SJA 제주의 교육 ‘End point’(지향점·최종목표)는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능력 개발에 토대를 둔 유기적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과 숙달된 학습 능력, 기술이 충분히 축적된 상황이다. 학생의 목표에 따라 고교 때까지의 총체적인 여정일 수도 있고 졸업 이후일 수도 있다. 토스카노 총교장은 “캡스톤의 경우, 학생들은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인지 모르고 그저 즐겁고 재미있게 하다가 축적의 산물을 느낀다. 그게 지향점”이라며 “학생들에게는 대학 이후에도 삶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지향점은 학생들이 졸업한 이후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학생의 90% 이상이 한국 학생인 SJA 제주를 이끌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책임감은 남다르다.

“여기는 나의 학교가 아닌 우리의 학교예요. 공동체들과 학교를 끌고 나가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학부모들과 대화해 보면 생각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대학 진학 얘기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요. 이런 부분들이 나에게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 “자율 아래서 책임감을 배웠다” ▼

SJA 제주 재학생으로 지난 학기 교환학생으로 미국 본교에 다녀온 양진호 군(왼쪽에서 두 번째)과 이민규 군(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이번 학기 본교에서 SJA 제주에 교환학생으로 온 데너리즈 양(오른쪽에서 첫 번째), 엘리자베스 양과 함께 방과 후 학교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SJA 제주 제공
SJA 제주 재학생으로 지난 학기 교환학생으로 미국 본교에 다녀온 양진호 군(왼쪽에서 두 번째)과 이민규 군(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이번 학기 본교에서 SJA 제주에 교환학생으로 온 데너리즈 양(오른쪽에서 첫 번째), 엘리자베스 양과 함께 방과 후 학교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SJA 제주 제공
SJA 제주는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학생들을 대상으로 본교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JA 제주 학생들이 본교에서 교육을 경험했고, 본교 학생도 현재 2명이 SJA 제주에 다니고 있다.

교환학생으로 본교를 다녀온 양진호 학생(11학년)은 “미국 고교를 경험해 보길 꿈꿔 왔다.

교환학생 기간 동안 보다 자립적이 되고, 영어로 나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성과가 좋았던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민규 학생(10학년)은 “본교는 수업과 과외 활동 때 엄청난 자율성을 주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의 중요성을 새롭게 느낀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번 학기 본교에서 SJA 제주로 온 여학생 다우셔 엘리자베스는 “전문적이고 최신식 시설을 갖춘 이곳 캠퍼스에 놀랐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어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에듀플러스#edu plus#교육#토스카노 총교장#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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