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가 소고기를 무쇠철판에 올리자 고기 익는 냄새와 경쾌한 소리가 코와 귀를 자극했다. 식욕을 억누른 채 초미세먼지(PM2.5) 측정 기기를 켰다. 기기는 한국환경공단 등 정부 기관에서 쓰는 미국 TSI사의 ‘더스트 트랙 8530’이었다. 고기를 굽기 전 실내 초미세먼지 농도는 m³당 35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이었다. 하지만 고기를 굽자 초미세먼지 농도는 순간 553μg까지 치솟았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매우 나쁨’ 수준인 100μg 안팎을 유지했다.
2년 전 환경부는 조리 중 고등어구이를 할 때 미세먼지 배출량이 가장 많다고 발표했다가 중국발 미세먼지 영향을 희석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샀다. 조리 시 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던 취지는 ‘고등어는 죄가 없다’는 말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고기와 생선을 구울 때 초미세먼지 등 각종 오염물질이 나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소 △돼지 △닭 △오리 등 4가지 육류를 대상으로 구이 시 오염물질 배출량을 집계하고 있다. 그 결과를 담은 ‘2015 국가 오염물질 배출량’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처음 공개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고기 종류도 조리법과 구이 방식에 따라 오염물질 배출량이 천차만별이었다. 기자가 먹은 대로 양념을 하지 않은 소고기를 무쇠철판에 구워 먹으면 고기 kg당 약 0.32g의 초미세먼지가 나온다. 이걸 숯불에 직접 구웠다면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kg당 2.62g으로 8배 넘게 증가한다.
돼지나 닭, 오리 고기 역시 철판보다는 직화 구이 시 초미세먼지 배출량이 더 많았다. 고기의 기름과 수분이 숯에 떨어지면서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 오염물질 양이 늘기 때문이다. 또 양념을 한 고기가 양념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오염물질 배출량이 더 많았다. 양념 속 수분과 기름기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고기 조리법은 양대창을 직화로 구웠을 때다. 이때 발생하는 초미세먼지는 생소고기를 철판에 구웠을 때의 133배인 42.61g에 이른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최근 고기나 생선 구이 시 오염물질을 더욱 정확하게 집계하기 위한 연구 용역에 들어갔다. 조사 대상에 양고기와 생선 등을 추가하고, 배출량 계산 시 식당 현황과 매출 자료 등도 활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고기구이로 인한 배출량은 전체 육류 소비량 중 식당에서 구이용으로 소비되는 양을 추정한 뒤 구이 종류와 방식별 배출계수를 곱해 산정해왔다.
이렇게 계산한 2015년 기준 고기구이로 인한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연간 574t이다. 전체 국내 초미세먼지량을 감안하면 0.5% 수준이다. 하지만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배출량은 적지만 고기구이는 자동차만큼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접하는 배출원이어서 관리가 필요하다”며 “고기와 생선 구이 측정 결과는 향후 식당의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만드는 기초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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