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8시 경기 성남시 검단초등학교 옆 1차로 도로. 등교 중이던 한 남자 어린이가 뒤에서 울린 승용차의 경적 소리에 놀라 왼쪽 가장자리로 몸을 바짝 붙였다. 어린이가 피하자 경적을 울렸던 차량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어린이가 몸을 붙인 곳엔 승용차 화물차 등 차량 62대가 세워져 있었다. 초등학교 주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는 있으면 안 되는 ‘노상주차장’이었다. 이 주차장 때문에 어린이들이 등하교 때마다 도로 한가운데를 걸어야 한다.
○ 불법과 타협한 스쿨존
스쿨존에서는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의 주 출입문과 직접 연결된 도로의 노상주차장은 모두 ‘불법’이다. 1995년 제정된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 8조에 명시돼 있다. 2011년에는 규칙 제정 이전에 들어선 주차장도 폐지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2월 전국의 스쿨존 1만6000여 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스쿨존에 불법 노상주차장 380개가 설치돼 있었다. 불법 주차면은 모두 7522면에 달했다. 이 중 폐지 계획이 있는 건 41곳(11%)으로 주차면 기준 465면(6%)뿐이었다. 검단초등학교 스쿨존 내 불법 주차면은 150면으로 전국에서 3번째로 많았다.
스쿨존에서 차량의 주정차를 금지하는 건 몸집이 작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이 잦은 어린이의 신체와 행동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린이가 차 사이에 가려져 있다가 도로로 뛰어 나오는 것을 운전자가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어린이는 3명이었다. 이 중 2명이 도로 횡단 중 사고를 당했다. 횡단 중 부상당한 어린이는 241명으로 전체 부상 어린이 474명의 50.8%였다.
스쿨존 내 불법 노상주차장 운영 주체의 94%가 지방자치단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차량 109대를 주차할 수 있는 노상주차장이 있는 인천 서구의 J어린이집 스쿨존은 노란색 바탕의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 바로 아래에 주차 요금을 징수하는 관리사무소가 있다. ‘인천서구시설관리공단’이란 표기가 사무소 가건물 위에 쓰여 있었다. 13일 오후 3시쯤 인근 태권도장에서 수업을 마친 어린이 8명이 주차돼 있던 차량 74대 사이를 비집고 다니거나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공단 소속 주차요원은 어린이의 안전엔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린이집은 초등학교와 달리 민간 건물에 입주해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초행길 운전자는 이곳에 아이들이 등하원 하는 어린이집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J어린이집에 다섯 살 아들이 다니는 신모 씨(41·여)는 “두 달 전 아들을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두 살짜리 아들이 타고 있던 유모차를 보도에 세워둔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승용차가 보도 바로 앞까지 주차하는 모습을 보니 운전자가 유모차를 보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아찔했다”고 말했다.
○ 선거 의식해 안전 무시하는 지자체
지자체도 스쿨존 내 노상주차장이 불법이란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주차난과 주민 민원을 이유로 불법 주차장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관계자는 “노상주차장이 스쿨존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건 알지만 주차장을 없애면 불법 주정차가 늘지 않을까 우려된다. 주차 단속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인천 서구 관계자는 “주차장이 스쿨존 지정 이전에 들어선 데다 유동인구가 많은 전통시장도 주변에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 때 주민 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지자체장들이 스쿨존 내 노상주차장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안부는 2020년까지 스쿨존 내 불법 노상주차장을 모두 없애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주민 편의를 이유로 안전이 무시되는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이다. 주차장이 없어진 자리에는 보도를 설치해 어린이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도록 하고 불법 주정차를 근절하기 위한 시민 신고도 독려할 방침이다. 학부모들이 스쿨존 내 불법 노상주차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통계 정보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상시 공개할 예정이다. 스쿨존 노상주차장을 철거하는 지자체에는 대체 주차장 부지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등과 협의할 예정이다.
류희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불법 주정차 같은 비정상적 관행으로 어린이 교통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어른들이 제 할 일을 소홀히 한 부끄러운 결과”라며 “스쿨존만큼은 절대 불법 주정차가 없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자체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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