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서 사실과 다른 부분 4곳…체포 필요성 인정 안 돼”
“체포 이후 미란다원칙 고지 및 의료조치 미흡도 문제”
경찰이 서울 강남 소재 클럽 ‘버닝썬’ 폭행 피해 신고자 김상교씨(29)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김씨에게 미란다원칙 고지 및 의료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박광우 인권위 조사총괄과장은 1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1층 인권교육센터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김씨의 체포 관련 진정사건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강남경찰서장에게 당시 역삼지구대 책임자급 경찰관들에 대하여 주의조치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찰청장에게 현행범 체포시 그 필요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범죄수사 규칙에 반영하도록 개정하고, 부상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 수사기관 편의에 따라 장시간 지구대에 인치하는 사례가 없도록 업무관행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11월24일 김씨가 ‘버닝썬’ 앞에서 클럽 직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후 112에 신고했는데 오히려 폭행, 업무방해 혐의를 받아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또 체포와 이송과정에서 경찰관들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로 인해 얼굴에 피가나고 갈비뼈 등을 다쳤으나 지구대에서 의료조치를 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 “현행범 체포 필요성 인정 안 돼”
현행범 체포가 적절했는지와 관련해 담당 경찰관들은 “김씨가 흥분해 클럽 직원들에게 위협적으로 달려들고 경찰관들에게도 시비를 걸어 진정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며 “계속 행패를 부릴 경우 폭행 등 혐의로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김씨가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아 체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112신고사건처리표, 현행범인체포서, 사건 현장과 지구대 폐쇄회로(CC)TV영상, 경찰관 바디캠 영상 등을 확인한 결과, Δ경찰이 김씨와 클럽 직원 간 실랑이를 보고도 곧바로 제지하지 않았고 Δ김씨와 클럽 직원들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씨의 신고내용을 청취해 2차 말다툼이 발생했으며 Δ김씨의 피해진술을 충분히 청취하거나 직접 확인하려는 적극적인 조치가 부족했고 Δ김씨의 항의에 대하여 경찰 또한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부분을 고려하면 경찰의 초동조치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작성한 현행범인 체포서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4가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에 따르면 김씨가 클럽 앞에서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클럽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인 것은 약 2분이었고, 경찰관에게 한 차례 욕설을 하였으나, 경찰이 작성한 현행범인 체포서에는 ‘20여 분간 클럽 보안업무를 방해하였고, 경찰관에게 수많은 욕설을 하였다.’고 기재돼 있었다.
또한 현행범인 체포서에는 ‘김씨가 격렬히 반항하면서 오히려 경찰관 목덜미를 잡아채는 유형력을 행사했다’고 돼 있는데, 인권위 조사에서 경찰관이 김씨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중심을 잃는 과정에서 앞 경찰관의 목을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했지만 김씨가 확인을 거부했다는 내용과 김씨가 클럽직원 장씨를 폭행했다는 부분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는 또 김씨를 현행범 체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김씨에게 진정하라고 몇 차례 말한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현행범 체포 전 김씨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거나 체포될 수 있음을 사전에 경고하는 과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가 한 차례 욕설을 하며 약 20초간 경찰관에게 항의한 것을 두고 현장 도착 후 3분만에 김씨를 바닥에 넘어뜨려 체포한 것은 현행범 체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김씨가 클럽 앞에서 쓰레기 등을 어지럽히고 클럽 직원들과 실랑이가 있었던 상황, 김씨가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하며 항의하였던 사정, 나아가 현장 상황에 대한 경찰관의 재량을 상당 부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는 당시 상황에 비춰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공권력 행사의 남용이라며 피해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 체포 이후 미란다원칙 고지도 문제…의료조치 미흡은 건강권 침해
인권위 조사결과, 경찰은 미란다원칙도 김씨를 체포한 이후 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경찰이 피해자를 넘어뜨려서 수갑을 채운 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말하는 내용은 확인되나 김씨가 폭력으로 대응하는 등 사전에 미란다원칙을 고지하지 못할 정도의 급박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체포 이후에 미란다원칙을 고지한 것은 적법절차 위반이라고 봤다.
의료조치 미흡과 관련해서도 경찰은 김씨가 병원치료를 원한다고 해 지구대에서 119에 신고하였으나 김씨가 후송을 거부했고, 김씨의 어머니가 지구대에 방문해 119에 다시 신고했으나 119 구급대원들이 응급을 요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돌아갔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후 김씨가 계속 아프다고 소리쳐서 일단 석방하고 나중에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갑을 해제하고 119에 신고했다”며 “그런데 김씨가 서류에 침을 뱉어 던져서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 억제 등을 위해 피해자에게 다시 수갑을 채웠고, 범죄가 추가돼 병원에 후송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 조사에서 경찰이 “조사가 진행 중이고 응급상황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김씨의 병원 후송을 거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도주·증거 인멸 염려가 없는 가운데, 김씨가 통증을 호소하고 보호자가 지구대에 방문해 치료를 계속 요청했고,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119 구급대원의 의견이 있었음에도 김씨에게 뒷수갑을 채워 의자에 결박한 상태로 적절한 의료조치 없이 2시간30분 가량 대기하게 했다”고 지적하고 “경찰서 인계는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김씨의 건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경찰이 폭행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박 과장은 “순찰차 내 욕설, 폭행에 대해서도 조사는 했지만 현재 김씨가 경찰들을 검찰에 고소해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위원회법에 따라 별도의 판단 없이 경찰로 이송했다”고 전했다.
◇ “현행범 체포는 최후의 보충적 수단…부당한 인신제한도 없어야”
인권위는 영장주의의 적용을 받지 않는 현행범 체포가 특별한 제약없이 현장에서 오용되거나 남용된다면 영장주의 원칙이 퇴색하는 등 사법적 통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체포 현장에서 체포의 필요성을 고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체포를 현장 상황을 해결하는 만능수단이 아니라 최후의 보충적 수단으로 인식하는 태도가 요구되고, 이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또 “체포된 사람에게 부상이나 질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할 때, 도주·증거인멸 염려 등으로 수사절차 상 신병확보가 반드시 요구되지 않는다면 신속히 석방해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수사 편의에 따라 장시간 지구대에 인치함으로써 부당한 인신의 제한이 계속되지 않도록 업무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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