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가입 암환자에 허위처방… 남성혈액으로 난소암 검사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6일 03시 00분


[환자 잡는 사무장병원] <상> 건보 재정 빼먹는 과잉진료


전북 전주시의 A한방병원에선 2012년 9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직원과 환자 사이에 은밀한 제안이 오갔다. 어깨나 무릎이 아파서 찾아온 노인 환자들에게 간호조무사 박모 씨(50·여)와 오모 씨(46·여)가 “침을 무료로 맞고 용돈까지 벌 수 있다”고 말을 꺼내는 게 첫 단계였다. 환자가 관심을 보이면 형식적으로 혈압을 재고 소변 검사를 했다. 그러고 나면 가벼운 어깨 결림으로 병원을 찾았던 환자는 중증 허리디스크에 시달리는 입원 환자로 둔갑했다.

이런 환자가 실제로 입원하는 일은 없었다. ‘가짜 입원환자’ 494명은 귀가했다가 미리 약속한 날에만 찾아와 무료로 침을 맞고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퇴원 확인서를 받아갔다. A한방병원은 이들의 입원료와 각종 검사 및 치료비 명목으로 매일 수백만 원의 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했다. 이런 식으로 A한방병원이 4년여간 빼먹은 건보 진료비는 총 34억6193만 원에 달했다. 건보공단 조사 결과 이 한방병원은 의료진 자격이 없는 김모 씨(61)가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위장해서 세운 ‘사무장병원’이었다.

○ 50만 명분 건보료 빼먹어

현행법상 의료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면허를 빌려 병원을 운영하면 사무장병원이 된다. 약사가 아닌 사람이 약사를 내세워 약국을 꾸리면 ‘면허대여 약국’으로 모두 불법 개설 기관이다. 건보 진료비는 건보공단 부담금과 환자 본인 부담금으로 나뉜다. 진료비가 1000원이라면 건보공단이 700원, 환자가 300원을 내는 식이다. 적발되면 불법 개설 기관을 운영한 동안 건보공단뿐만 아니라 환자로부터 받은 진료비까지 전액 징수 대상이 된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불법 개설 기관은 총 1531곳이다. 첫해인 2009년엔 6곳이 적발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엔 170곳이 불법 개설 기관으로 판명돼 그 수가 크게 늘었다. 요양병원을 포함한 일반 병·의원이 988곳(64.5%)으로 절반이 넘었고, 한방 병·의원 261곳(17.1%), 치과 병·의원 143곳(9.3%), 약국 139곳(9.1%) 등이 뒤를 이었다.

그간 불법 개설 기관이 빼먹은 건보 진료비와 약제비는 총 2조5490억4300만 원이다. 지난해에만 6489억9000만 원이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으로 빠져나갔다. 불법 청구 금액이 지난 5년간 연평균 1027억 원씩 증가한 결과다.

건보 재정은 지난해 8년 만에 당기 적자를 기록해, 전체 적립금의 규모가 2017년 20조7733억 원에서 지난해 20조5955억 원으로 줄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보 적립금은 계속 줄어들다가 2026년 바닥나 1조5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 개설 기관만 제대로 단속해도 건보 재정이 고갈되는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투자금 뽑으려 과잉 진료

‘돈줄’인 사무장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갖은 수법을 쓴다. 환자에게 불필요한 진료를 권하거나 고가의 약을 처방하는 것은 기본이다. 가족이나 지인을 ‘유령 환자’로 둔갑시키고 실제로는 하지 않은 수술비를 청구하는 사례도 있다. 충남 논산시의 B요양병원은 콩팥 투석 환자에게 1명당 20만∼50만 원을 쥐여주고 이들을 입원 환자로 꾸며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299억 원의 건보 진료비를 받아 챙겼다.

아예 설립 단계부터 보험 사기범과 결탁해 가짜 입원 환자를 늘리는 사례도 흔하다. 환자를 유치해온 브로커에게 진료비의 10∼20%를 떼어주거나 월 300만 원을 주고 영업사원으로 고용해 조직적으로 환자를 끌어모은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암 환자만 골라 받은 뒤 비싼 약을 허위로 처방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2013년부터 정부가 4대 중증질환(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진료비의 본인 부담을 낮춘 점을 사무장병원이 환자와 결탁해 악용한 것이다. ‘바지 원장’을 앉힌 지 5개월 만에 10억 원을 챙긴 한 한방병원은 입원이 필요 없는 환자에게 “입원 환자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외출해서) 개인 일을 봐도 된다”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진료비 부풀리기는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나타났다. 건보공단이 2017년까지 적발된 사무장의원의 의료 행태를 분석한 결과, 환자 1명당 평균 외래 진료비가 34만8000원으로 일반의원(12만5000원)의 2배가 넘었다. 환자 1명당 입원 일수도 사무장의원은 15.6일, 일반의원은 8.6일로 차이가 컸다.

전문가들은 사무장병원이 수사당국의 감시를 피하면서도 이익을 늘리기 위해 갈수록 교묘한 수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보 혜택이 적용되는 환자는 ‘박리다매’로 저렴하게 치료하되 건보공단이 파악할 수 없는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등의 방식이다.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험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사무장병원의 수법이 국가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
#사무장병원#불법 개설 기관#허위처방#과잉진료#건강보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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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19-03-26 04:51:09

    역시 전라도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오네

  • 2019-03-26 08:18:34

    한무당들이 뭘 안다꼬... 모르는걸 다 아는체 진료하는 넘이나 그걸 또 믿고 치료를 맏기는 사람이나 도찐 개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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