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안해도 월급 700만원… 검은 유혹에 넘어간 의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6일 03시 00분


적발된 바지원장 18%가 70代 이상… 사무장병원에 면허만 빌려줘
온라인 구인사이트 통해 ‘거래’

건강보험 재정을 빼먹는 사무장병원의 ‘바지 원장’인 의사와 ‘돈줄’인 사무장은 공생 관계다. 의사는 큰 노력 없이도 월 5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챙길 수 있고, 사무장은 건보 진료비를 청구하며 은행 이자보다 높은 투자금 대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사무장병원에 이름을 빌려주는 의사 중 대다수는 진료 업무를 보기 어려운 고령의 의사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6월 사이에 적발된 사무장병원의 의사 206명 중 70대 이상은 18%인 37명이었다. 같은 기간 전국 의사 중 70대 이상의 비율(3%)보다 6배 수준으로 높다.

사무장병원에 가담한 고령의 의사는 직접 진료를 하지 않고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게 진료를 떠넘기는 일이 많다. 경기 성남시에선 치기공사 출신 사무장 A 씨가 78세 치과 의사의 이름을 빌려 치과 의원을 차린 사례가 있었다. A 씨가 직접 환자를 보다가 엉뚱한 이를 뽑는 일까지 벌어졌다.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병원이나 약국을 차릴 형편이 되지 않는 젊은 의사나 약사가 타깃이 되기도 한다. 2012년 5월 “월 700만 원을 줄 테니 약사 면허를 빌려 달라”는 사무장 B 씨(57·여)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른바 ‘면허대여(면대) 약국’에서 일하다가 2014년 12월 적발된 약사 C 씨(31)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C 씨는 현재 B 씨와 함께 건강보험 약제비 50억2119만 원과 지연 이자 등 총 60억 원을 갚아 나가고 있다.

사무장과 의사는 주로 온라인 구인 사이트에서 만난다. 25일 한 사이트에서 “원장님을 모십니다”라는 문구로 검색해보니 새로 개설하는 병원에서 원장으로 일할 의사를 찾는다는 글이 20건 넘게 나타났다. 김양균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의사가 사무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정부가 병의원 개업비용을 낮은 이자로 보조하되 에듀파인 같은 국가관리회계 시스템으로 진료비를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사무장병원#면허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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