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숭모비(崇慕碑)가 사라진 지 24년 만에 나타났다. 숭모비를 발견한 농부는 기증 절차를 밟고 있다.
안 의사 숭모비는 1961년 12월 3일 광주 전남 유림과 지역민들이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기 위해 성금을 모아 광주공원에 세웠다. 일제강점기 일본 신사(神社)와 일본군 충혼비가 있던 광주공원에 애국애족의 정신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였다.
광복 이후 전국 최초였던 안 의사 숭모비는 높이 270cm, 가로세로 90cm, 무게 6t의 국내산 오석(烏石)으로 제작했다.
앞면에는 ‘大韓義士 安公重根 崇慕碑(대한의사 안공중근 숭모비)’라고 비명(碑銘)을 적었고 뒷면에는 안 의사의 공적과 숭모비 건립 경위 등을 새겼다.
숭모비는 1987년 현재의 광주 중외공원으로 옮겨졌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숭모비 자리에 안 의사 동상을 세우기 위해 숭모비를 뒤쪽 언덕으로 옮겨 놓았는데 누군가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이후 숭모비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그렇게 24년이 흐른 지난달 전남 나주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 씨(47)가 나주의 한 석재상에서 숭모비와 비슷한 크기의 비석을 발견했다. 마침 지역 언론이 광주 각계에서 숭모비를 찾고 있다는 보도를 한 즈음이었다. 이 비석의 비명과 비문을 사진으로 찍어 컴퓨터로 옮기던 이 씨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것이 숭모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씨는 사재 680만 원으로 숭모비를 석재상에게서 구입해 광주시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광주시는 다음 달 기증식을 열어 숭모비를 인수한 뒤 어디에 세우거나 보관할지 검토할 방침이라고 28일 밝혔다.
농사를 지으면서 벌초 대행을 하고 있다는 이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시골 촌부이지만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최초 숭모비의 역사적 가치는 알고 있었다”며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숭모비를 원래 주인인 광주시에 기증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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