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때 온 가족 총살당해…명예회복 때까지 목소리 낼 것”

  • 뉴스1
  • 입력 2019년 3월 29일 17시 59분


4·3 증언 본풀이 마당서 79세 김낭규씨 증언

29일 오후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18회 제주4·3 증언 본풀이에서 김낭규씨(79·여·제주시 화북동)가 증언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2019.3.29/뉴스1© 뉴스1
29일 오후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18회 제주4·3 증언 본풀이에서 김낭규씨(79·여·제주시 화북동)가 증언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2019.3.29/뉴스1© 뉴스1
“우리 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29일 오후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18회 제주4·3 증언 본풀이에서 김낭규씨(79·여·제주시 화북동)는 4·3으로 송두리째 흔들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난 김씨는 교사였던 아버지 고(故) 김대진씨와 어머니 고 김양순씨 아래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김씨는 아버지에 대해 “신촌국민학교(1945년·현 신촌초)를 설립해 나이 상관 없이 모든 주민들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우셨다”며 “3·1운동 기념식(1947년) 때도 태극기를 손수 만들며 준비에 앞장섰던 훌륭하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김씨가 4·3의 굴레에 갇히기 시작한 건 9살 때인 1949년부터다. 아버지가 무장대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집안이 풍비박산나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사복 차림의 경찰이 매일 밤 찾아와 아버지의 행방을 물었다”고 했다.

1949년 1월5일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저녁 경찰의 기척에 옆 큰아버지댁 돌담 뒤로 몸을 숨긴 김씨는 울고 있는 자신의 5살·3살배기 동생을 뒤로 한 채 끌려 나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10여 분 뒤 마을에는 ‘탕, 탕, 탕’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을 어르신들이 어린 김씨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알려줬다.

그 길로 김씨는 두 동생과 함께 외할아버지댁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접한 소식 또한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닷새 뒤 어머니도 경찰서 앞에서 잔인하게 총살당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어머니 시신을 수습해 주신 분들이 ‘어머니 손에 손톱이 하나도 안 남아 있었다’고 했다. 도망치려 이밭 저밭을 기어다닌 탓”이라고 말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외할아버지댁에는 어머니가 총살당하기 직전 맡기고 간 두 살배기 동생도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배곯은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김씨는 그 해 6월10일 군경을 피해 산으로 도망쳤던 아버지 마저 총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군경이 아버지의 시신을 며칠간 전시한 뒤 불에 태웠다는 이야기도 함께 접했다.

김씨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버지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을 죽이길 했느냐, 남의 집에 불을 붙이길 했느냐”며 “좋은 일만 하셨는데 그렇게 돌아가셨다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눈물을 쏟았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부 보수 측의 문제제기로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안치됐던 아버지의 위패가 철거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씨는 제주4·3희생자추념일이었던 2017년 4월3일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를 찾았다가 이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했다. 이를 지켜보던 공무원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그 날 이후 사흘 간을 눈물로 지샜다. 너무 힘들어 미칠 것만 같았다”며 “이제까지 (명예회복이) 안 된 영혼들은 어디 구석에서 숨어 살고 있지 않겠느냐. 이 원통함을 어디에다 풀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80년 가까이 살면서 지난 날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며 “아버지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4·3 희생자로 인정받는 날까지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