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30대 여성이 다급히 경찰서를 찾았다. 초등학생 딸이 낯선 사람과 나체 사진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이 학부모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미성년자들을 꼬드겨 나체 사진을 받아낸 혐의로 50대 남성 A 씨를 입건했다. 그런데 경찰이 압수한 A 씨 휴대전화에서 수상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 발견됐다. 미성년자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아동 포르노’ 영상 수천 건이 유포된 대화방이었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이런 영상을 촬영하고 대화방에 유포한 아동 포르노 동호회장 B 씨(43)를 청소년성보호법상 음란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대화방에서 영상을 돌려보며 B 씨에게 제작비를 지급한 A 씨 등 3명은 성폭력 재발방지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 그들에겐 너무 쉬웠던 아동포르노 제작
대화방에 유포된 영상 대부분은 B 씨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면서 촬영한 것이다. 그는 휴대전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13∼19세 미성년자들을 찾아 말을 걸었다. 무직인 B 씨는 자신을 기획사 보컬 트레이너로 소개하면서 미성년자들을 가수로 데뷔시켜줄 것처럼 접근했다. 이어 연인처럼 굴면서 성관계를 유도했다. 미성년자들에게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서류까지 받아냈다. 영상 속에 얼굴이 드러난 피해자만 25명에 달했다.
2016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대화방이 운영되는 동안 피해 미성년자 중 ‘성폭력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자신이 범죄 피해를 당한 건지 몰랐기 때문이다.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아저씨를 사랑한다”며 면회를 온 피해자도 있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B 씨처럼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나체 사진을 받아내는 등의 성범죄(음란물 제작·유포)로 검거된 건수가 2017년 한 해에만 총 427건이었다. ○ 미성년자 가장해 채팅 앱 가입하자 수십 명 접근
본보 기자가 2일 ‘○○(11세)’란 이름으로 휴대전화 채팅 앱에 가입하자 30분 만에 40여 명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들은 친구 관계나 가정환경이 어떤지 묻고는 편하게 고민을 상담하라며 접근했다. 이어 ‘이런 채팅 앱은 위험하니까 만나서 얘기하자’ ‘얼굴을 볼 수 있게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신체 사진을 먼저 보낸 뒤 ‘왜 네 것은 안 보내느냐. 사기로 고소하고 학교에 알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외롭게 지내는 아이들이 온라인의 대화 상대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쉽게 유대감을 쌓는다”며 “많은 어린이들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구가 잘못됐다는 걸 모르고 응하곤 한다”고 말했다.
미성년자로부터 나체 사진을 받아낸 성인들이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도 있다. 중학생 C 양은 2017년 1월 채팅 앱에서 대화를 나누던 D 씨 요구로 나체 사진을 보냈다. 그런데 그는 순식간에 돌변해 사진을 유포하겠다면서 성관계를 요구했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고 6개월간 괴로워하던 C 양은 결국 부모에게 알린 뒤 지난해 경찰에 신고했다.
○ “성적 의도 접근 자체도 처벌해야”
전문가들은 성인이 온라인으로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만나자고 하거나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도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는 성인이 온라인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성적 표현을 하거나 부모의 허락 없는 만남을 시도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성년자를 꼬드겨 음란행위를 하도록 한 성인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청소년성보호법상 음란물 제작·유포 혐의는 최소 징역 5년,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중범죄다. 하지만 본보가 대법원 판결검색 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이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의 1심 형량을 살펴본 결과 전체 79건 중 23건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법원이 초범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직권으로 형량을 절반 가까이 깎고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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