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단 키움 홈구장인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4층에 올라가면 다른 층과는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노란색 벽면에는 출구 방향으로 달리는 사람 모습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계단 역시 노란색으로 칠해져 눈에 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피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고안된 ‘안전 디자인’이다.
지난해 12월 시선의 위치와 움직임 등을 파악하는 ‘아이트래킹(eye-tracking)’ 장비를 활용해 9명을 대상으로 효과를 검증했다. 안전 디자인이 적용된 구간에서 대피할 때 시선 고정 횟수가 평균 29%, 시선 고정 시간은 13% 감소했다. 대피 경로를 안전 디자인 적용 이전보다 쉽게 찾았다는 의미다. 대피시간도 평균 19% 줄었다. 고척돔은 벽 앞에 덩그러니 놓던 소화기도 벽면에 소화기 여러 대를 거는 디자인으로 바꿔 눈에 잘 띄게 했다.
안전 디자인 개발과 적용을 맡은 서울디자인재단과 서울시설공단은 안전 디자인을 고척돔 전체에 반영하고 다른 대형 경기장과 공연장 등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고척돔처럼 디자인을 개선해 시설이나 제품 이용자가 체감하는 효용을 향상시키는 것을 서비스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미적 가치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용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쇼핑몰 벽면에 같은 색상의 줄을 그려 고객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유도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서비스 디자인은 최근 공공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서울디자인재단과 서울시설공단은 청계천에도 안전도 향상을 위해 서비스 디자인을 입혔다. ‘진입 통제, 침수 위험’이라고만 적힌 출입구에는 경고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계단은 노란색을 입혀 눈에 잘 띄게 했다. 두 기관은 2015년부터 자동차 전용도로 진·출입로와 터널구간, 지하상가, 공영 주차장 등에 서비스 디자인을 본격 적용했다.
디자인업계에서는 서비스 디자인으로 대피 시간 축소 같은 물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긍정적 인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양천구가 공공화장실 17곳의 장애인화장실 표지를 가족화장실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기존 장애인화장실 표지는 휠체어 그림만 있었다면 가족화장실은 지팡이를 든 노인과 유모차 그림이 추가됐다. 공간이 넓은 화장실이니만큼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함께 들어가서 이용하라는 의미다. 기존 표지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분리시킨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면 가족화장실 표지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화장실을 선택해서 이용한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 이용률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남녀를 파란색 빨간색으로 나누지 않고 모양으로만 구분하도록 해 성별 고정관념을 없애는 효과도 노렸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서비스 디자인을 활용할 공공 영역을 계속 늘릴 계획이다.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어린이집도 그 중 하나다. 권희대 서울디자인재단 디자인사업팀장은 “어린이집 아이와 교사들의 동선과 움직임, 장난감 등 각종 도구를 사용하는 행태 등을 분석해 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모범 디자인을 개발해 공공어린이집부터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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