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탈북 여성 A 씨는 지난해 8월 탈북 여성 전문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공무원인 50대 남성 B 씨와 첫 만남을 가졌다. 두 번째 만나는 날 B 씨는 차를 직접 몰고 A 씨 집 앞으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았다. A 씨가 운전석 옆자리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B 씨는 갑자기 A 씨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당황한 A 씨는 “무슨 짓이냐”며 따졌다. 그런데 B 씨는 사과는커녕 “같은 동네에 계속 살고 싶으면 (오늘 일을) 다른 데 알리지 말라”며 협박을 했다고 한다.
○ “북한×들이 비싸게 군다”… 성폭력·폭언 일삼아
탈북 여성 전문 결혼정보업체 등에 따르면 A 씨처럼 탈북 여성들이 한국 남성들에게 성폭력과 폭언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5년 11월 탈북 여성 C 씨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40대 남성 D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D 씨는 처음 만나기로 한 날 미리 예약해 둔 호텔방으로 C 씨를 끌어들였다. D 씨는 성폭행을 한 뒤로 연락을 끊었다. C 씨는 “내가 탈북민이라고 얕본 게 아니라면 그런 짓을 하고도 사과조차 안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탈북 여성 E 씨는 올해 2월 연인이던 40대 남성 F 씨에게 그만 만나자고 했다가 “300만 원을 주기 전까진 못 헤어진다”는 협박에 시달리다 결국 돈을 뜯겼다.
탈북 여성 전문 결혼정보업체를 운영 중인 30대 여성 G 씨는 “업체를 찾는 남성 10명 중 9명은 ‘애 낳을 젊은 여자’를 찾는다. 거절하면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욕을 한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2월 G 씨 업체를 찾아온 50대 남성 역시 “애 잘 낳을 어린 여자를 원한다”며 회원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G 씨는 이 남성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북한 것들이 고귀한 척한다”는 등의 심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지난해 7월에는 30대 여성을 만나고 싶다는 60대 남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가 “북한×들이 비싸게 군다”는 막말을 들었다.
○ 당하고도 참을 수밖에 없는 탈북 여성들
2017년 4월 탈북 여성 H 씨는 소개로 만난 남성한테 성추행을 당했다. 결혼정보업체 대표는 수사기관에 고소를 하자고 H 씨를 설득했다. 하지만 H 씨는 “내 살점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남세스럽다”며 고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해 6월엔 한 탈북 여성이 소개받은 남성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결혼정보업체 대표가 이 남성에게 항의하려 하자 탈북 여성은 “알려지면 창피하다”며 오히려 업체 대표를 말렸다고 한다.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은 “북한은 한국보다 훨씬 남성 우위의 사회여서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소문이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며 “탈북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길 꺼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탈북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남북하나재단이 두 달에 한 번 발간해 탈북민들에게 보내는 잡지 ‘동포사랑’ 뒷면에는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관계자의 연락처 등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전화를 하면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라는 게 탈북 여성들의 얘기다. 30대 탈북 여성 I 씨는 “경찰서의 탈북민 담당관은 대부분 남성이라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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