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窓]지적장애인 삶 망가뜨린 ‘두얼굴의 친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9일 03시 00분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때리면서 돈을 요구했어요. 부모님께 알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면서요.”

7일 본보 기자와 만난 지적장애인 김모 씨(36)는 최모 씨(36) 때문에 10년 가까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털어놨다. 김 씨는 동네 친구의 소개로 2008년 최 씨를 알게 됐다고 한다. 평소 친구가 많지 않았던 김 씨는 동갑내기인 최 씨가 종종 연락을 해오자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엔 최 씨의 연락이 반가웠다고 했다.

하지만 알고 지낸 지 2년쯤 지날 무렵 최 씨가 본색을 드러냈다. 변변한 돈벌이가 없던 최 씨는 김 씨가 장애를 앓는 데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건설현장과 식당에서 일하느라 김 씨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악용했다. 최 씨는 자신이 학창시절 이른바 ‘짱’이었다고 위협하면서 김 씨를 폭행하고 돈을 요구했다. 최 씨는 김 씨에게 대부업체 두 곳에서 각각 200만 원을 빌리게 한 뒤 이를 가로챘다. 김 씨 명의로 10대가 넘는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이를 팔아넘기기도 했다. 이때 생긴 빚 때문에 김 씨는 2012년 2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김 씨가 파산선고를 받은 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최 씨는 1년쯤 지나자 다시 김 씨를 찾았다. 최 씨는 “그때 일은 미안했다. 다시 잘해보자”고 했다고 한다. 1년 만에 나타난 최 씨의 약탈은 더 심해졌다. 2013년 최 씨는 김 씨의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면서 한푼 두푼 모아 놓은 1100만 원을 통장에서 모두 빼내갔다. 통장 비밀번호는 김 씨를 통해 알아냈다. 김 씨가 아르바이트를 해 버는 일당도 그때그때 가져갔다. 김 씨가 직장에 잠시 다닐 때는 ‘돈이 급하다’며 수십만 원씩 가불을 하도록 했다. 김 씨는 가불이 쌓이면서 회사에서 쫓겨났다. 최 씨는 김 씨의 퇴직금도 빼앗았다.

김 씨는 2017년 주위의 소개로 다시 일자리를 얻어 한 유통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자 김 씨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최 씨는 월급날에 맞춰 돈을 또 빼가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김 씨를 시켜 대부업체에서 세 차례에 걸쳐 약 1400만 원을 빌리게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최 씨가 김 씨에게서 빼앗은 돈은 모두 4600여만 원이다. 이에 대해 최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친구끼리 사이가 좋아서 돈거래를 한 것이다. 다 갚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씨 가족들의 삶도 망가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파산선고를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아 두 차례나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암투병을 해오던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됐다고 한다. 김 씨의 동생(34)은 “최 씨 때문에 우리 가족의 삶이 다 무너졌다”며 울먹였다.

공갈 등의 혐의로 최 씨를 입건한 경기 광명경찰서는 지난달 26일 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지적장애인#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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