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9시 강원 속초시청 앞. 주황색 조끼를 맞춰 입은 속초시 자원봉사센터 사람들 사이에서 남색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트럭에 구호물품을 싣고 있었다. 강원 지역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보낼 생수와 과자, 컵라면 등이었다. 목수 일을 하는 최영섭 씨(61)였다. 최 씨는 인천의 한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4일 밤 산불 소식을 듣고 목공 장비가 실린 파란색 1.5t 트럭을 몰고 속초까지 왔다.
최 씨는 그날 인천 공사 현장에서 다른 목수들을 통솔하는 ‘목수 반장’을 맡고 있었다. 다른 목수들보다 일당을 1.5배가량 더 받는 날이었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속초행을 택했다. 최 씨는 “일당을 더 받는 날이 많지는 않지만 이재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포기할 만 하죠”라며 웃었다.
산불이 휩쓸고 간 강원 속초와 강릉 등 피해 지역에는 이재민들을 도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육광남 씨(68)는 4일 밤 화재 속보를 접하자마자 비행기 편을 알아본 뒤 속초로 날아왔다. 6일 새벽 속초에 도착한 육 씨는 속초청소년수련관에서 구호물품을 싣고 내리는 일을 도왔다. 한때 용접공으로 일했던 육 씨는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절단공이 필요하다’는 TV 화면 자막을 보고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시 함께 봉사한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틈이 날 때마다 재난 현장을 찾고 있다. 육 씨는 “내가 가진 기술로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더 뿌듯하다. 화재 지역에 직접 가 철거 작업도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봉사 경험은 없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속초로 달려온 시민들도 있다. 4월 모의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대구 구암고 3학년 정성욱 군(18)도 그중 한 명이다. 정 군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6일 오후 10시 속초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구에서 속초까지 5시간을 달려왔다. 평소라면 ‘남의 일이구나’ 하고 넘겼을 테지만 전국 각지의 소방관들이 모여드는 ‘소방 어벤저스’의 모습을 보고는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정 군은 속초청소년수련관에서 구호물자를 정리하고 이재민 숙소를 청소하며 일손을 보탰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회사원 정성훈 씨(29)는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짬을 내 속초와 고성을 찾았다. 평소 여행을 같이 다니던 15년 지기 동네 친구 3명도 동참했다. 일요일인 7일 오전 차를 몰고 속초에 도착한 뒤 6시간 동안 구호물품을 옮기고 서울로 돌아왔다. 정 씨는 “평일엔 회사를 가야 해 봉사를 하루밖에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려는 시민도 있었다. 2년 전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로 집이 모두 불에 타는 아픔을 겪은 전승운 씨(61)는 이후 화재 현장을 찾아다니며 산불이 휩쓸고 간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이번 화재 이후에도 고성과 강릉시 옥계면, 속초 관광명소 ‘대조영 촬영지’ 등을 돌며 화마가 덮치고 간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스스로를 ‘산불현장 기록자’라고 부르는 그는 “산불 전문 다큐멘터리 작가가 돼 산불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10일부터 산불 피해 구호에 나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역 창구에 자원봉사증명서를 제시하면 전국 모든 열차를 무료로 탈 수 있게 했다. 이미 구입한 승차권도 역 창구에서 환불받을 수 있다. 코레일은 또 이날부터 이달 말까지 강릉선 고속철도(KTX)를 타고 강원도를 찾는 승객의 운임 30%를 할인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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