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등 혐의로 고광현 전 대표 기소
2016년 검찰 수사 개시후 자료 삭제·폐기
키워드로 검색 후 하드디스크 교체 지시
팀 꾸려 국정조사 대비…자료 몰래 숨겨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수사했던 지난 2016년 애경산업 임직원들이 컴퓨터 내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하드디스크에 구멍을 뚫어 파괴하는 등 증거 인멸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증거인멸·은닉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는 지난 2016년 검찰 수사 개시 직후 회사 직원들이 사용하던 업무용 PC와 노트북에서 파일을 삭제하고 하드디스크와 노트북을 교체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 전 대표는 지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애경산업 대표이사를 지냈다.
검찰은 고 전 대표 지시에 따라 당시 애경산업 및 산하 연구소 직원들의 업무용 PC와 노트북에서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를 검색해 파일을 삭제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그와 무관한 파일들만 별도로 외부저장장치에 보관하고 이전에 사용하던 하드디스크에는 구멍을 뚫어 물리적으로 파괴한 것으로 파악했다.
고 전 대표와 양모 전 전무 등은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이 구성돼 2월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자 이에 대비하고자 애경에 불리한 자료를 인멸·은닉하는 등 대응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같은해 2월 연구원들과 관련부서 직원들의 업무용 PC와 노트북에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파란하늘’ 등의 키워드로 이메일과 그룹웨어 쪽지, 기안문, 보고자료, 연구자료, 논문 등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를 검색하게 해 하드디스크 교체 대상자들을 확인했다.
이후 명단을 추려 대상자들의 PC와 노트북에서 관련 파일을 삭제한 후 교체토록 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연구소에서 33명, 관련 부서에서 각각 16명, 6명(8대)의 하드디스크와 노트북을 바꾼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또 검찰은 연구소 직원들의 이메일 계정에서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를 검색한 후 해당 이메일을 영구 삭제한 혐의도 포착했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고객 클레임을 처리했던 관련 부서 직원들의 이메일도 포함됐다.
이와 함께 애경산업이 1997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했던 가습기살균제 ‘파란하늘 맑은 가습기’ 제품 관련 자료도 폐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수사로 애경도 그 수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국회 국정조사에 대비하고자 고 전 대표는 ‘국정조사TFT’ 조직을 만들도록 지시한 사실도 파악됐다. 그에 따라 양 전 전무를 팀장으로 하는 팀을 구성해 회사 인근에 비밀 사무실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이 2016년 6월부터 10월까지 직원들로부터 취합해 비밀리에 관리해오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와 회사 서버에 저장돼 있는 관련 파일 일체 등을 총 점검하고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제출할 자료 범위 등을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해 10월 국정조사가 끝난 후에는 고 전 대표가 해당 팀원들이 갖고 있던 자료들을 수거해 폐기하고 비밀리에 보관할 필요가 있는 나머지 자료들은 회사 외부 장소에 은밀히 보관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포착했다.
이후 가습기메이트의 흡입독성에 대한 시험보고서와 이를 요약정리한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 자료, ‘파란하늘 맑은 가습기’ 관련 자료, ‘가습기메이트 출시경위’ 등 4개의 핵심자료를 한 직원의 처갓집 다락 창고에 몰래 숨겼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이사를 소환조사하는 등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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