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승리했다”…‘낙태죄 위헌’에 헌재앞 감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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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11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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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꾼 결정” 자축…“앞으로 ‘모자보건법’ 재검토 등 과제도”
낙태죄 찬성 측 헌법재판소 규탄 “국가책임 저버린 성급한 판단”

“지금 결과가 나왔습니다. 헌법 불합치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흐르던 초조한 공기가 단숨에 뒤집혔다.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며 이른 오전부터 결과를 기다리던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하면서 낙태죄 처벌조항인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는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치열하게 장외전을 벌여 온 낙태죄 폐지 찬성과 반대 진영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큰 소리로 “태아도 생명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던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국민연합) 측은 결정 이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사회자가 “기뻐하고 슬퍼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자 위헌 측은 “기쁩니다!”라고 외치며 맞섰다.

국민연합 측은 결과가 부당하게 내려졌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를 규탄하거나 앞으로 낙태죄를 되살리기 위해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외쳤다. 이들은 “불합치 결정이 났다고 ‘생명 행동’이 끝나지 않는다”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이행하라”고 소리쳤다.

‘낙태죄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는 입장문을 통해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낙태죄가 폐지됐을 때 예측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낙태죄 폐지를 이른 오전부터 외쳐 온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 측은 환호와 축하의 함성으로 술렁였다. 이들은 서로 포옹하거나 눈물을 훔치면서 위헌 결정을 자축했다.

나영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19세의 나이로 임신중지시술을 받던 도중 사망한 여성을 계속 생각했다”며 “그때 낙태죄 찬성 단체의 시술병원에 대한 악의적 고발이 없었다면, 그래서 처벌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 여성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이어 “2012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이 그 사망을 만들었고 때문에 그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었다”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이 법이 사회가 뭘 할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을 이었다. “무려 3명의 재판관이 완전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승리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낙태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났지만 낙태죄 폐지를 구체화할 입법활동 등 향후 과제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나영 위원장은 “(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명시한) 모자보건법도 전면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며 “허용한계를 규정해온 이 조항이 존속할 이유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 “다만 입법부에게 구체적인 변화의 책임을 미룬 데 대해서는 아쉽다”며 “앞으로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고, 국회는 이를 보장할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이 공동행동 집행위원도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포괄적 성교육과 고용·청소년·가족·이주·보건의료 등 정책 전반에서 성평등을 보장하고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가 틀림없이 보장될 수 있게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및 보건복지부 등이 연계 시스템을 마련해여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임신중지 전후의 건강관리와 유산유도제 공급 및 어디서든 피임·임신·임신중지·출산과 관련된 안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 마련 등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이기도 한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돌려보냈던 여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며 “앞으로는 당신이 임신을 중지하든 유지하든 의료진이 당신을 도우겠다고 할 수 있는 날이 와서 감격스럽다”고 웃었다.

결정을 마주한 일반 시민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헌재 정문 앞에서 손피켓을 들고 ‘인증샷’을 남기던 우새하씨(27·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지만 66년 만에 한국에 이런 변화가 왔다는 것이 여성 입장에서는 각별하게 느껴진다”며 “계속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 왔던 분들이 생각나서 벅차오르는 순간”이라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헌재 결정을 직접 방청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는 김도연양(17·여)은 “불합치 결정이기는 하지만 헌법상 문제가 있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여성 인권계의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합법화 이후에도 남성의 무책임한 양육 기피, 임신을 여성 억압의 도구로 쓰는 모든 것들을 제한하는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모든 발언을 마친 공동행동은 ‘낙태죄 위헌’이라고 적힌 피켓을 환호와 함께 허공에 날려보내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안국역 5번 출구 앞에서 대중집회를 열 예정이다.

낙태죄 위헌 결정이라는 결과를 받아든 국회는 오는 2020년 12월31일까지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이 시한이 만료되면 낙태죄의 법률 효력은 사라진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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