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측 "역사적 진전"…박수치고 포옹
"여성 통제 대상으로 삼은 지난 역사 마침표"
찬성 측 "생명 죽은 날…혼란 누가 책임지나"
"헌법 정신은 '모든' 생명 보호…태아도 생명"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가 내려진 헌법재판소 앞은 찬반 측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달렸다.
이날 오후 2시48분께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페) 측에선 환호성이 울려퍼졌고, 서로를 안아주기도 했다. 청년·종교계·청소년계·의료계·장애계 등 각계 단체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이날 오전부터 나와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문설희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7년 만에 역사적 진전을 이룬 승리의 날”이라며 “그동안 거리에 나가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요구와 함께 수년에 걸쳐 낙태죄 폐지를 외쳐왔다”고 말했다.
나영 위원장은 울먹이면서 “여성 건강, 생명을 위해 처벌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가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폐지되길 바라왔다”며 “이번 판결은 그런 역사가 만들어낸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제 개발과 인구 관리 목적을 위해 생명을 선별하고 여성을 통제 대상으로 삼고 책임을 전가해왔던 지난 역사에 대해 마침표를 찍는 중대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대리인단 일원인 김수정 변호사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주목받아야 할 날”이라며 “오늘 판결은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조항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판결을 보면 (낙태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출산을 강제하지 말라는 내용이 명백히 나와있다”며 “임신과 출산, 양육에서 1차적 주체는 여성이고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라는 게 이번 헌재 판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낙태죄 유지를 주장해 온 측은 한동안 정적만이 흘렀다.
한 시민은 침울한 표정으로 “저쪽(폐지 주장 측)에서 환호가 터지네요”라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2012년 합헌 선고를 뒤집는 이번 결정은 시대착오적이며 비과학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론이 자연법칙을 이기고 정치가 생명과학을 이긴 것”이라며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국가가 법으로 허용한다는 것은 모순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또 “헌법 정신은 ‘모든’ 생명의 보호라고 돼 있다”며 “형성 중인 생명도 생명이라는 점에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밝혔다.
김길수 생명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정의가 죽은 날, 태아의 생명이 죽은 날이다. 오늘 헌재의 결정은 예측되는 수많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채 일부 여론에 떠밀려 내려진 듯한 느낌”이라며 “사회적 혼란이 온다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는 2012년 8월 낙태죄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4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으면 현재보다 더 만연하게 될 것”이라며 “임신 초기나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게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산부인과 의사 A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임신중절수술을 한 혐의(업무상 승낙 낙태)로 기소되자 1심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2017년 2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날 헌재는 재판관 4(헌법불합치)대3(단순위헌)대2(합헌)로 낙태죄 처벌 관련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 및 270조 1항(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재판관 9인 중 7인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즉시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 법적 공백으로 사회적 혼란이 생길 수 있어 법 개정 시한을 두는 것으로, 헌재는 2020년 12월31일을 시한으로 개정하되 그때까지 현행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개정되지 않을 경우 2021년 1월1일부터 효력을 상실시켜 전면 폐지하도록 했다.
헌재는 이날 낙태를 전면 반대하고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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