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4명·위헌 3명 판단 내려
문재인 정부 임명된 5명 위헌 의견
여성재판관 2명 동시 재임도 영향
퇴임 앞둔 조용호·서기석 의견 갈려
낙태죄 처벌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전격적으로 나온 배경에는 시대 변화와 맞물려 재판관 구성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5명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내는 등 다수의 진보 성향 재판관이 목소리를 내면서 2012년 헌재 결정이 뒤집혔다는 것이다.
헌재는 11일 임산부와 의사 등이 낙태를 했을 때 처벌토록 한 형법 269조1항과 270조1항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당장 법의 효력이 없어질 경우 사회적으로 혼란이 빚어질 상황을 고려해 내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날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이 헌법불합치로 판단했으며,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단순 위헌의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낙태죄가 임신 기간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의사를 처벌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봤다.
지난 2012년에는 재판관 4대 4로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국 합헌 결정이 났지만 7년 만에 과반이 넘는 위헌 판단이 나온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당시와 비교해 재판관 구성이 모두 달라진 만큼 이번 선고를 앞두고 지난 결정이 뒤집어질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최근 잇따라 헌재에 입성한 재판관들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면서 기존 결정이 바뀌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재판관 9명 중 6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고, 실제 이중 5명이 낙태죄를 헌법불합치 또는 위헌으로 판단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영진·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다.
유남석 소장은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천된 김기영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다.
헌재 사상 최초로 여성 재판관 2명이 동시에 재임 중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선애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이은애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전효숙·이정미 재판관에 이은 세번째, 네번째 여성 재판관이다. 반면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합헌 결정이 난 후 7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선례의 판단을 바꿀 정도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합헌으로 판단했다. 조 재판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으며, 이 재판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임명됐다.
두 재판관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중대한 공익이며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몫으로 임명된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은 의견이 엇갈렸다. 이번 선고는 오는 18일 임기를 마치는 이들의 퇴임을 앞두고 마련돼 두 재판관의 판단이 더욱 주목됐다.
낙태죄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 재판관과 달리 서 재판관은 위헌적인 규정으로 판단했다. 다만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곧바로 위헌으로 결정할 경우 법적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점을 고려해 법 개정을 주문했다.
조 재판관과 서 재판관이 헌재를 떠나면서 향후 재판관 9명 중 8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들로 채워지게 됐다. 문 대통령은 현재 문형배·이미선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지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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