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 경상대병원 응급실에서 A 씨(31·여)는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A 씨는 17일 오전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묻지 마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최모 양(19)의 사촌언니다. 1급 시각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던 최 양은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뇌병변으로 몸의 반쪽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A 씨는 “노래와 그림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최근에는 자기처럼 아픈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했다. 꿈도 많고 욕심도 많은 아이였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최 양은 몸은 불편했지만 ‘아픈 게 전혀 티가 나지 않는 밝은 친구’였다고 유가족과 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13년에는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 나가 육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두 개나 땄을 만큼 활동적이었다. A 씨에 따르면 당시 최 양은 대회가 있기 며칠 전부터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훈련도 했다고 한다.
최 양은 숙모인 강모 씨(54)와 둘이 이 아파트에서 4세 때부터 함께 살았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최 양을 보살필 사람이 마땅치 않게 되자 강 씨가 최 양을 거뒀다. 10년 넘게 회사 구내식당에서 일하며 혼자 최 양을 돌봤다. 한글을 쓰는 법부터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 건너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강 씨도 이날 머리와 목, 등허리, 손 등을 흉기에 공격당해 중상을 입었다. 강 씨는 사고 직후 가족들이 부르는 소리에 ‘응’이라는 대답도 겨우 할 정도로 의사소통이 힘들었지만 정신을 차리자마자 최 양부터 찾았다고 한다.
강 씨의 언니(57)는 “눈 뜨자마자 ‘많이 다쳤는데 괜찮아?’라고 조카를 걱정하더라”며 “친자식도 그렇게 키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은 일가족도 있었다. 흉기로 공격당해 중상을 입은 차모 씨(41·여)의 딸 금모 양(12)과 시어머니 김모 씨(65)가 이날 목숨을 잃었다. 차 씨의 조카 염모 양(18)은 연기를 흡입해 경상을 입었다. 차 씨의 언니는 “(동생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더 넓은 아파트에 당첨됐다며 좋아했다. 나와 같이 그 집을 보러 갔다 오기도 했는데 이렇게 딸을 보내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허망해했다. 차 씨의 오빠는 “조카가 곧 수학여행을 간다며 들떴었다”며 착잡해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올해 3월부터 일한 수습사원 정모 씨(29)는 자신도 흉기에 공격당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대피를 먼저 도왔다.
야간 당직이던 정 씨는 화재 직후 관리사무소에 울린 비상벨 소리를 듣고 아파트 단지로 달려갔다가 살인 피의자 안모 씨가 흉기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고 112에 신고했다. 정 씨는 안 씨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을 다쳤지만 더 심한 부상을 입은 주민들을 구급차로 옮기는 것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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