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임팩트 저널리즘 데이’]
‘지구의 심장’ 프로젝트: 본보가 전한 환경문제 해법
‘쌀 빨대’ 개발 김광필 연지곤지 대표
김광필
연지곤지 대표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쌀 빨대’를 먹어보이고 있다. 김 대표 앞에는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쌀 빨대가 통에 담겨
있다. 쌀과 타피오카 가루를 7 대 3의 비율로 섞어 만든 쌀 빨대는 먹을 수 있으며 100일 이내에 자연 분해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동아일보는 ‘지구의 날’(22일)을 앞두고 프랑스 르피가로, 이스라엘 하아레츠 등 세계 17개 주요 언론사와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조명하는 ‘지구의 심장(Earth Beats)’ 프로젝트에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100일이면 자연 분해되는 쌀 빨대를 개발한 업체 ‘연지곤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나무를 심는 사회혁신기업 ‘트리플래닛’의 이야기를 통해 주요 언론들과 함께 환경 문제 해법을 모색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 50여 개 언론사가 같은 날 동시에 사회 문제에 대한 각국의 해결책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임팩트 저널리즘 데이’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해외 언론이 소개하는 기발한 환경 문제 해법은 동아일보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희 빨대는 ‘먹을 수 있는’ 빨대입니다. 먹기 싫으면 그냥 버려도 돼요. 화단에 꽂아도 되고, 어항에 넣어도 금방 분해됩니다.”
세계 최초로 ‘쌀 빨대’를 개발한 김광필 연지곤지 대표(42)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공유 사무실 ‘스페이시스’에서 만난 그는 기자에게 쌀 빨대를 꽂은 아이스 음료부터 건넸다. 엉겁결에 받아들고 빨대를 입에 물었다. 플라스틱 빨대보다 딱딱했고 쌀 냄새도 조금 느껴졌다. 음료 본연의 맛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쌀가루와 타피오카(식용녹말) 가루를 7 대 3 비율로 섞어 만든 연지곤지의 쌀 빨대는 먹을 수 있는 제품이다. 플라스틱 빨대의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높다는 점에 착안해 탄생했다. ○ ‘꽃신’ 만들다 변신한 ‘친환경 빨대 사업가’
김 대표는 한양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하던 1998년 부친을 여의었다. 이듬해 가업인 연지곤지를 물려받았다. 그의 부모님이 20년간 운영했던 연지곤지는 원래 꽃신을 제조하고 유통하던 업체였다. 김 대표가 이후 15년 이상 연지곤지를 운영했지만 이는 사실상 사양 산업이었다. 여기에만 매달릴 순 없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그는 2017년 초 우연히 미국 스타트업 ‘롤리웨어(Loliware)’가 식물성 소재로 ‘먹을 수 있는 컵’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먹을 수 있는 컵이 있다면 먹을 수 있는 빨대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직접 개발에 나섰다.
“한국인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 식재료는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바로 쌀이 떠올랐죠.”
당초 김 대표는 한국산 쌀을 이용해 한국에서 빨대를 제조하려 했다. 하지만 생산 단가를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쌀값과 인건비가 모두 저렴한 베트남 최대 도시 호찌민에 공장을 마련했다.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약 1년 반 동안 제품 개발에 매달린 결과, 지난해 8월 제품화에 성공했다. 현재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는 빨대 수는 한 달에 약 5억 개. 그는 “시원한 음료 수요가 늘어나는 올여름에는 월 생산량이 7억 개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쌀 빨대 사업부문 매출 규모는 월 2000만 원 수준이나 김 대표는 올 연말에 매출이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11개국 소재 기업들과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국내에선 소규모 카페에 납품하고 있으며 유명 백화점 대형마트 호텔 등에도 입점할 예정이다.
○ 어떻게 버려도 100일이면 자연 분해
쌀 빨대의 최대 장점은 빠르게 분해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일반 플라스틱 빨대가 썩는 데 약 200년이 걸리지만 쌀 빨대는 어떻게 버려도 최대 100일이면 완전히 분해된다”고 했다. 그는 “집에 있는 어항에 쌀 빨대를 넣으니 물고기들이 빨대를 뜯어먹어 한 달도 안 돼 사라졌다”며 “일반 쓰레기로 버려도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도 상관없다. 그래도 가장 좋은 건 먹어서 없애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건은 가격 문제다. 플라스틱 빨대 소매 공급가는 개당 3∼4원으로 개당 30∼35원인 쌀 빨대의 10분의 1 수준이다. 아직 한국 내에서 널리 쓰이지 못하는 이유도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이다. 김 대표는 “빨대를 월 20억∼25억 개 생산하면 플라스틱 빨대 값의 120% 수준(개당 약 5원 이내)까지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플라스틱 빨대 대체품으로 각광받는 ‘종이 빨대’도 완벽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종이 빨대를 만들려면 원 재료인 나무를 베어야 한다”며 “쌀 빨대는 동남아에서 지천으로 남아도는 쌀로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쌀로 만든 일회용 컵, 포크, 스푼, 나이프, 비닐봉지 개발도 마쳤다. 이를 이르면 5월부터 국내외 업체들에 판매할 계획이다.
○ “쌀 빨대 만들며 높아진 환경에 대한 관심”
플라스틱 빨대의 편리함에 익숙한 소비자들로서는 쌀 빨대를 사용하는 초기엔 다소 불편할 수 있다. 플라스틱 빨대처럼 구부러지지도 않고, 오래 보관하려면 파스타 통 등에 밀봉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 보호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쌀 빨대를 구입해 쓰고 있다는 제주 서귀포시 카페 꽃이다의 모정은 사장(36)은 “생각보다 손님들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 모 사장은 “섬에 살다 보니 근처 바닷가에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걸 남들보다 많이 본다. 나의 조그만 노력이 쓰레기 감소에 기여한다는 것이 뿌듯하다.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쌀 빨대의 품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날씨가 추워지면 일부 빨대에서 음료를 마시는 도중 금이 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쌀과 타피오카 가루의 배합 비율을 바꿔 기존 7∼10%이던 불량률을 3∼5%로 낮췄다”고 말했다.
‘환경 전도사’ 풍모를 풍기는 김 대표에게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았냐고 물었다. 그는 “창피하지만 예전에는 분리배출도 귀찮아서 잘 안 했어요. 쌀 빨대 사업을 시작한 뒤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도 많이 바뀌었어요. 제 스스로도 이런 변화에 놀랍니다.”
한번은 어떻게 알았는지 한 초등학생 기자가 그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당돌한 ‘꼬마’ 기자는 그에게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환경을 망가뜨린 데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질문을 받고 죄책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환경에 관심이 없었던 부끄러운 과거를 면하려고 요즘엔 분리배출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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