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반칙이고 범죄입니다]사건수임 전혀 안한 변호사 16명
박시환 등 5명 교단서 후학 양성… 박보영 시골판사, 배기원 법률봉사
現대법관 상당수 ‘개업 포기 서약’
“전관예우가 실제 있든 없든 고위직 법관이 퇴임해서 변호사를 하는 건 후배들한테 부담을 줄 수 있죠. 후배들이 ‘당신만은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박시환 전 대법관은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변호사 개업을 포기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내가 잘나서 대법관이 된 게 아닌데 최소한 그거라도 따라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1년 11월 퇴임한 박 전 대법관은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8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처럼 전직 대법관 중엔 의식적으로 전관예우와 거리를 두는 이들이 많다. 변호사 등록을 했더라도 영업을 아예 안 하거나 극소수의 사건만 수임한다. 지난해 상고심 사건 판결문 분석 결과 수임 건수가 ‘0건’인 전직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16명이었다. 4명은 수임 건수가 1건뿐이었다. 개업 신고를 한 전직 대법관 출신 변호사 41명 중 절반 가까운 20명이 변호사 활동을 사실상 하지 않는 것이다.
전직 대법관 중 5명은 오랜 법관 생활을 통한 법률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교단에 섰다. 지난해 8월 대법관 임기를 마친 김신 김창석 전 대법관을 비롯해 양창수 조무제 전 대법관 등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법원 대법정을 떠나 다시 일선 법원 법대에 앉은 전직 대법관도 있다. 지난해 1월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 대신 ‘시골 판사’를 택했다. 지난해 9월부터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에서 1심 소액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퇴임 당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지역 법률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법정에 갔던 한 변호인은 소액사건 재판에서 보기 드문 인상 깊은 재판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사건 당사자가 30분 넘게 이어간 호소를 박 전 대법관은 끝까지 들어줬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세상에 이런 판사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변호사도 없이 사건 당사자가 직접 항변하는데 차분히 잘 들어 주시더라”고 말했다. 또 “지역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 하는데 박 전 대법관 법정만 들어가면 나오질 못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며 웃었다.
공익 활동에 전념하는 전직 대법관들도 있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공익인권재단 공감의 이사장과 대한적십자사 법률고문, 서울대 이사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배기원 전 대법관은 퇴임 후 서울 서초구에서 무료 법률 봉사를 한 적이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부터 국회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변호사 개업 포기 서약서를 보내고 있다. 박상옥 대법관부터 시작해 이기택 김재형 대법관 등은 인사청문회에서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김선수 조재연 대법관도 변호사 개업 포기 서약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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