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만동 서울 민간건물 지진대응 손놨다…내진보강 전무 ‘속수무책’

  • 뉴시스
  • 입력 2019년 4월 24일 1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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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대책 내놨지만 공공건축물 대응 그쳐
민간건축물 서울 전체 건축물 중 85%에 달해
지진에 더 취약한 필로티형 건축물 약 5만동
전문가들 "민간 건물, 정부가 보강 강제 못해"

동해상에서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면서 내륙에서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 역시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빈틈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과 2018년에 서울시 차원의 지진 대책이 잇따라 발표됐지만 50만동이 넘는 민간건축물 관련 대책은 부실하다. 민간건축물은 사유재산인 탓에 소유주를 상대로 내진성능 보강을 강요할 수도 없어 사실상 속수무책이라는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서울시는 2016년 경주지진(9월12일) 전인 같은해 6월 ‘지진방재 종합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는 내진성능이 100% 확보된 수도시설, 공동구, 시립병원, 수문 외에 공공건축물, 도시철도, 도로시설물, 하수처리시설의 내진성능을 최대한 빨리 확보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지난해 4월에는 기존 지진방재 종합계획에 경주지진과 포항지진(2017년 11월15일) 결과까지 반영한 ‘지진안전종합대책’을 새로 발표했다. 이 대책은 3년간 2819억원을 투입해 공공시설물 내진율을 80% 이상으로 올린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두 대책 모두 공공건축물에 초점을 맞춘 탓에 민간건축물은 도외시됐다. 2018년 대책에 ‘내진보강 공사비 보조금 지원을 추진하고 건축물대장에 필로티 구조 건축물 등록 의무와 등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중앙부처와 협의해 추진한다’는 전제가 달리면서 실효성이 떨어졌다.

민간건축물 내진성능 보강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기도 어렵다. 기본적으로 민간건축물은 사유재산이라 내진성능 보강 여부는 건축주나 건물주가 판단할 사항이다. 건물주들은 공사비 부담 등을 이유로 내진성능 사후 보강을 꺼리고 있고 이로 인해 서울시 민간건축물 내진율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시내에 내진성능이 확보되지 않은 민간 건축물은 52만동으로 전체 건축물(62만동)의 85%에 달한다. 52만동 중 지진에 더 취약한 필로티형 건축물만 약 5만동이다.

민간건축물 내진성능 보강이 지지부진한 것은 예산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서울시가 예산을 투입해 보강공사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소요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민간건축물을 모두 보강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탓에 시는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수반되므로 민간건축물 내진성능을 보강하겠다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도 198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내진설계 대상이 아니다. 일본도 업그레이드된 기준이 적용되기 전에 지어진 건물에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피난로나 소방차 통행로와 연결되는 중요한 도로에 접하고 있는 민간건축물에 한해 내진성능 보강공사 비용을 일부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보험을 활용해 내진성능 보강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국 역시 전체 민간건축물의 내진성능을 보강하는 것은 역부족이란 것이다.

예산 문제에 부딪힌 서울시는 중앙정부에 공을 넘기려 했지만 정부 역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 지진문제를 다루는 조직인 지역건축안전센터가 지난해 행정안전부에 민간건축물 내진성능보강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행안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역건축안전센터 관계자는 “작년에 행안부에 민간건축물에 한해서 내진성능 보강공사를 할 때 공사비용을 지원해줄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을 제안했는데 아직은 반영은 안 된 상황”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서울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행안부 역시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예산 부족을 호소했다.
행안부 지진방재정책과 관계자는 “내진설계나 내진보강이 적용 안 된 취약한 민간건축물에 비용을 지원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시설물 안전은 관리 주체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국고지원시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으며 이미 내진성능을 확보한 건축물과의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어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에 제출된 지진·화산재해대책법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예산 문제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박명재·장제원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에는 각각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아니한 기존의 민간소유 건축물에 대한 내진보강을 권장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내진보강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의 범위에서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아니한 기존의 민간소유 건축물에 대한 내진보강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소요예산 규모 문제 때문에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행안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건축물 내진보강을 유도하기 위해 ‘지진안전 시설물 인증제’를 지난달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건축주나 건물주가 내진성능평가를 받으면 서류심사와 현장실사, 인증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물에 부착할 수 있는 ‘인증명판’을 발급하는 것이다. 인증에 소요되는 내진성능평가 비용(300만~1000만원)과 인증수수료(480만~660만원)의 일부가 지원된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내진성능 보강공사 비용 자체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서울시내 민간건축물 내진성능 보강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면적인 보강을 놓고는 신중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김진구 한국지진공학회 회장은 “세금으로 공사할 수 없는 민간 건물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강제하기도 어렵다. 정부 예산을 투입해서 민간 건물 내진 보강을 해주기도 어렵다”며 “건축주가 내진보강을 하면 좋지만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 때문에 사적인 재산을 투입해서 내진보강을 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서울지역 지진 발생 가능성에 관해서는 “요즘 지진이 일본과 가까운 동해안과 경상도지역에서 발생하면서 동일본대지진의 여파가 아직 한반도 동쪽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서울시는 우선순위는 낮은 지역”이라면서도 “그렇지만 1600년대나 1700년대 서울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어 서울이 지진과 전혀 무관한 지역은 아니다. 언제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서울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예산이 많기 때문에 시에서 보조금을 제공한다든지 해서 건물 내진보강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의회에서도 민간건축물 내진성능 보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부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김평남 의원(강남2)은 “민간건축물 내진설계·내진보강 활성화를 위한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방안 강구 등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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