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장관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두고 강원 동해안 일대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의 기세를 보니 만만치 않은 상황임이 분명했다. 임기 전이었지만 현장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5일 오후 11시경 현장 상황실로 갔다. 전임 장관으로부터 현장에서 인수인계를 받고 임기가 시작된 6일 자정부터 피해상황을 점검했다.
숯덩이로 변한 집들을 둘러보고 잔불정리에 애쓰는 소방관들을 격려하면서 애잔함과 먹먹함을 느꼈다. 전국의 소방관들이 달려온 덕분에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지만 화마가 남기고 간 피해와 이재민의 아픔이 크다. 매번 소방관들의 투혼에만 의지해 대형 산불이나 화재 사고에 대응하기는 한계가 있다. 국민 생명을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은 없을까. 문제는 인력과 장비다. 소방인력이 부족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화재가 발생한 강원도는 필요한 소방관의 법정인원이 4132명이지만 현인원은 2800명 정도다. 필요인력이 10명이라면 실제 7명도 안 되는 인원이 투입되는 것이다. 살림살이가 그나마 나은 서울은 꾸준히 투자해 10명 기준 9명 정도를 확보하고 있지만 재정이 충분치 않은 시도는 6, 7명 수준이다. 소방장비 문제도 심각하다. 보호 장갑, 안전화 같은 기본 안전장비가 부족하거나 낡았다. 많은 소방관이 자비로 장비를 구입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프다. 큰불이 날 때마다 그들의 사투와 노고에 감사하면서도 제대로 처우개선을 해내지 못한 것은 미안한 일이다.
인력과 장비 부족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초기대응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소방관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 최근 5년간 순직하거나 다친 소방관이 2000명을 넘는다. 이번 산불에서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친 소방관이 없었지만 다음에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요행을 바라는 대신 시스템 자체를 바꾸겠다는 다짐과 행동이 필요하다.
강원 산불을 계기로 “이번에는 소방관을 국가공무원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확실한 재정지원과 시스템 정비를 통해 인력과 장비를 보강하고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격차가 국민에 대한 안전서비스 수준차로 이어지던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핵심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지역에 살든 균등한 소방서비스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소방업무의 성격 자체가 재난 구조와 국가적 재난대응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번 산불 역시 강원 지역에서만 대응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재난사태와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 것이다. 소방청장의 지원 요청에 따라 전국의 소방차가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많은 국민이 응원했다. 소방관의 국가직화는 넓어지는 소방업무에 더 잘 대응하기 위함이다. 일원화된 체계 아래 더 효과적인 지휘를 기대할 수 있다.
소방관 국가직화는 논의는 계속됐지만 마무리는 하지 못했다. 취임 후 현장에서 만난 소방관들은 국민 안전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소방관은 재난현장에서는 화마(火魔)를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이지만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다. 우리를 지켜온 소방관에게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영웅의 자긍심을 지켜주는 것, 산불현장에서 인수한 꼭 해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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