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낮 12시 25분경. 일본 도쿄 번화가인 도시마(豊島)구 이케부쿠로(池袋)의 왕복 4차로에서 폭발음이 연이어 들렸다. 그리고 현장에는 옆으로 넘어진 파란색 쓰레기 수거 차량과 심하게 파손된 도요타 프리우스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사고 차량 주변으로 보행자 7명이 쓰러져 있었다. 이 중 모녀 관계인 31세 여성과 3세 어린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모녀는 사고를 당하기 직전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프리우스 차량을 몰던 87세의 남성 운전자가 일으켰다. 목격자들은 프리우스 차량이 도로 제한 최고 속도인 시속 50km를 훌쩍 넘긴 시속 100km 정도로 150m가량을 달렸다고 진술했다. 프리우스 차량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가속 페달이 되돌아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은 프리우스 차량에 이상이 없었던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87세의 운전자를 과실운전 치사상 혐의로 조사 중이다. 약 1년 전부터 지팡이 없이는 걷기가 힘들었다는 사고 차량 운전자는 주변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해야겠다”고 말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율 증가
국내에서도 지난해 한 해에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843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22.1%로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자 비율로는 역대 가장 높았다. 국내 전체 운전면허증 보유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9.5%인데 이들이 낸 사망 교통사고는 20%가 넘는 것이다.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6년 17.7%, 2017년 20.3%, 2018년 22.3%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증 반납을 유도하는 정책이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98년부터 시작한 제도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면허증을 반납한 1만2769명의 운전자 중 93.3%가 고령 운전자였다. 2014년과 비교해 전체 반납자는 9배, 고령 반납자는 12배 가까이 늘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고령 운전자에게는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또 고령자들의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다.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에 대한 검증도 강화됐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올 1월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증 갱신 주기가 기존의 5년에서 3년으로 짧아졌다. 면허증 갱신 때 적성검사는 물론 2시간 과정의 교통안전교육을 반드시 받도록 했다. ○ 교통안전 위한 재원 확보 필요
문제는 재원이다. 서울시와 부산시 등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자진 반납제도를 시행 중인 지방자치단체마다 예상을 웃도는 면허증 반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면허증 반납 유도를 위해 마련한 제도의 혜택을 모든 고령 운전자가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지자체의 자체 재원만으로 관련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다. 경찰청은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자진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에 지급해야 할 보조금만 앞으로 5년간 매년 2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울시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면허증 반납이 이어지면서 ‘10만 원 충전 교통카드’ 지급에 필요한 추가 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열악한 지역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자가용 없이는 시장을 찾는 것이나 병원을 방문하는 일이 어려운 농어촌 지역에 많다.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교통안전 교육과 함께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경찰은 고령자의 운전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나 상해 등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통보받을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 개정 등을 추진 중이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를 줄이기 위한 도로표지판 글자 크기 확대와 노면 도색 개선 같은 시설 개선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경찰 관계자는 “면허증 반납을 장려하고 교통안전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교통안전 재원 조달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전남 영광군의 100원 버스, 대구시의 택시 환승 할인처럼 고령자의 대중교통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화물차 고령운전사도 자격유지 검사 추진 ▼
국토부, 버스-택시이어 확대 계획 경찰은 야간 운전제한 등 검토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택시와 버스,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을 모는 65세 이상 고령 운전사 비율도 높아졌다. 지난해 7월 65세 이상 택시 운전사는 7만2800명으로 전체 택시 운전사의 4분의 1이 넘는 27.1%였다. 80세 이상이 770명, 90세 이상도 237명이 있었다.
2017년 11월 2일 경남 창원터널 앞 도로에서는 화물차량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면서 화물차 운전사와 여성 운전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물차 운전사는 당시 76세였다. 화물차 운전사는 화물운송 자격을 얻지 않고 7.8t의 화학물질을 운송하는 트럭을 몰았다. 화물차 운전사는 이날 사고 이전에도 10건의 교통사고를 내 운송업체로부터 퇴직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현재 사업용 차량 중에서는 버스와 택시만 고령 운전사에 대한 자격유지 검사를 하고 있다. 2016년 버스에 모든 고령 운전사에 대한 자격유지 검사가 도입됐고 올해부터는 65세 이상의 택시 운전사도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하는 운전 행동과 관련된 인성, 습관, 행동 등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65∼69세 운전사는 3년마다, 70세부터는 매년 한 차례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버스와 택시를 모는 고령 운전사들의 사고 감소 효과를 분석해 자격유지 검사를 화물차 운전사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하지만 화물차의 경우 고령 운전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어 자격유지 검사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화물차량의 경우 많은 운전사가 개인 소유 차량을 운송업체에 등록한 뒤 운송량에 따라 돈을 받는 형태여서 고령 운전사 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청은 5월에 고령자 맞춤형 면허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운전과 관련된 신체 반응 능력 저하 등이 확인돼도 강제로 면허증을 회수하거나 운전시간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경찰은 연구용역을 통해 고령 운전사의 야간운전 제한, 최고 운행속도 제한 같은 ‘조건부 면허’ 등에 대해서도 검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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