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 우리 어머니, 집에서 계속 모시자니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고 요양병원에 모시자니 ‘불효자’가 되는 것만 같아서요….” 박영섭(가명·59) 씨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가정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부모를 집에서 모셔야 ‘효도’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효자 노릇이 버거운 사람이 많다. 과거처럼 어르신 부양을 가족이 도맡는 것만이 진짜 ‘효도’일까? 신예기가 부모 모시는 것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아봤다. 》
“언제나 제 유년 시절 기억 속에 포근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치매의 덫에 걸리신 지 벌써 2년째입니다. 제 나이 쉰아홉 살, 어머니는 벌써 80대시니 무리도 아니지요. 그런데도 여전히 전 어머니가 방금 전 식사한 것도 잊으시고 밥을 찾으실 때마다,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하지 못해 헤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저보다 더 많이 하게 되는 아내를 볼 면목도 없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아내도 모두 노인인데 얼마나 지치겠습니까.
결국 얼마 전 장남인 제가 다섯 동생을 모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요양병원 얘기를 꺼냈죠. 다들 말이 없더군요. 내심 제가 계속 어머니를 모시길 바라는 눈치였어요. 그래도 저희 가족의 고생을 아니까 차마 말은 못 하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만 하더군요. 결국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동생들에게 어렵게 말은 꺼냈지만 저도 사실 결정이 바로 서진 않습니다. 어머니가 우릴 어떻게 키웠는데 요양병원이라니요. 이런 불효자가 있을까요. 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박모 씨(59) 이야기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광주의 정모 씨(58). 그는 8년 전 고향 집에서 홀로 지내던 80세 노모를 요양병원으로 모신 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랜 당뇨 투병으로 합병증이 생겨 정기적인 신장 투석이 필요했지만,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가느니 차라리 투석을 안 받고 죽겠다고 버텼다. 어머니는 “네가 날 입원시킨 걸 알고 동네 사람들이 널 불효자라 욕하면 어쩌냐”며 “너를 욕보이느니 차라리 혼자 죽겠다”고 했다.
어렵게 도착한 요양병원은 모텔을 개조한 건물이었다. 병실엔 다닥다닥 붙은 침대 6대와 서랍장 6개가 전부였다. 서 있을 공간조차 없어 가족이 1시간 이상 머물기도 어려웠다. 입원 후 눈에 띄게 기력이 약해진 어머니는 2년 만에 치매에 걸렸고, 6년간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 씨는 “지금도 죄인인 마음”이라고 말했다.
아침엔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올리고, 저녁엔 잠자리를 봐드린다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은 한국인의 오래된 효 문화다. 하지만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병든 상태로 노년기를 보내는 인구가 늘어난 반면에 대가족 해체와 맞벌이 증가에 따라 이들을 돌볼 가족은 사라지면서 ‘정서’와 ‘현실’ 간 괴리가 커졌다.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시설에 맡기면서도 ‘불효’라는 죄책감을 벗을 수 없는 이유다.
홍순권 효사관학교장은 “과거엔 부모를 집에서 모셔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지만 요즘은 그게 불가능하다”며 “이제는 농경사회 시대의 ‘효’와는 다른 문화를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효행을 장려하겠다며 2008년부터 시행 중인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효’는 ‘자녀가 부모를 성실하게 부양하는 것’이다. 김덕균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장은 “이젠 어르신 부양을 자녀 개인이 아닌 사회 차원에서 준비해야 할 때”라며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변화와 함께 필요한 건 각 개인과 가정이 ‘우리 집안의 노년기’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김 단장은 “부모님이 온전할 때 스스로 고민하고 ‘내 건강이 안 좋아지면 특정 요양시설에 맡겨 달라’고 자녀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그 대신 ‘일주일에 식사 1번은 꼭 같이 하자’는 등의 조건을 달면 좋다”고 조언했다.
부모님 부양 방식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가족 내 ‘눈치 싸움’도 적지 않은 만큼 분란을 줄이기 위해 이견을 조율할 조정자를 결정할 필요도 있다. 남일성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가족이 미리 협의하고, 필요하다면 주 보호자를 정해 그 사람에게 결정의 전권을 맡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요양원 주야간보호센터를 5개월째 이용 중인 조영환 씨(94)는 “시설 선생님들이 매우 친절하고 집 밖에 나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면서도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고 최대한 부모를 생각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친을 3년째 서부시립노인전문요양센터에 모시고 있는 백라혜 씨(61)는 “어머니를 이곳에 모시기 전 충분히 얘기를 나눴지만 막상 입소 후 ‘나를 버리고 가느냐’고 말해 마음이 아팠다”며 “그래서 첫 석 달은 매일 찾아뵀더니 그제야 안심하시더라. 부모가 괜찮다고 해도 자녀가 자주 찾아뵙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요양시설을 선택할 때 ‘자주 찾아갈 수 있는 곳’을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은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순간 과거와 단절된 삶을 살게 돼 매우 힘들어한다”며 “자원봉사자가 많고 가족도 자주 오갈 수 있는 곳이어야 적응도 빠르고 학대 가능성도 작아진다”고 조언했다. 박득수 서울요양원장은 “시설에 처음 갔을 때 건물에 밴 냄새가 많이 난다면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증거일 수 있다”며 “반드시 가족이 직접 시설에 가봐야 청결 수준과 직원의 친절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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