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규 임용된 A 교사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 발령받자마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중2는 ‘중2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도하는 데 부담이 많아 경력교사들도 꺼리는 학년이지만 초임 교사인 A 교사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오기 전부터 맡을 학년과 시간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A 교사는 같은 과목을 맡은 교사 중 수업도 제일 많다. 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1, 5교시 수업도 도맡았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2월 말에 학교를 배치받다 보니 수업 준비도 벅찼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대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먼저 교직에 나간 대학교 선배들로부터는 ‘남학생한테 20대 여자 선생님은 얕잡아 보이기 쉽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A 교사는 20대 초보이면서도 학생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선생님은 서른 살 넘었어. 여기가 두 번째 학교야”라고 거짓말을 한다.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초임 교사들이 담임이나 학교폭력 업무 등 기존 교사들이 기피하는 과중한 업무를 떠맡는 일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경력이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나 학생에게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큰 업무를 기피하면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신규 교사가 그 일을 도맡는 것이다.
올해 신규 임용된 B 교사도 중학교 2학년 담임이다. 해당 과목에서 수업이 제일 많고, 학교폭력을 담당한다. 한 학부모는 자녀 일로 항의를 하러 왔다가 B 교사 얼굴을 보고 대뜸 “선생님 되신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B 교사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 학부모는 “저는 교사는 자질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임 교사가 고3 담임을 바로 맡는 경우도 있다. 이 학교 고3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시에 올인해야 하는데 담임이 올해 임용된 분이라 입시 경험이 없어 걱정스럽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5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신규 임용 교사 10명 중 7명(73%), 중등 신규 교사는 10명 중 6명(66%)이 첫 발령을 받자마자 바로 담임을 맡았다. 특히 중학교에서 신규 임용돼 담임을 맡은 교사의 48%는 업무 부담이 상당한 2학년 담당이었다. 교사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지는 교장의 철학이라 학교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신규 교사의 경우 교직 적응과 역량 제고를 위해 임용 첫해에는 담임을 맡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기간제 교사가 기존 교사의 기피 업무를 도맡기도 한다. 서울 C중학교는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지도부의 부장을 제외한 구성원 모두가 기간제 교사다. 기간제 교사들이 오기 전에 기존 교사들이 업무분장을 짜면서 그 자리만 비워뒀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기간제 교사 2명 중 1명(49%)은 담임을 맡았다. 기간제 교사 수는 전체 교사의 10%에 불과한데도 담임 비중은 과도하게 높은 것이다.
경력 교사들이 힘든 업무를 기피하다 보니 새 학기가 되면 담임과 주요 업무를 맡기느라 학교는 머리를 싸맨다. 서울 D고 교장은 “경력 교사들에게 ‘이건 책무성의 문제’라고 얘기해도 다들 이리저리 빠지려 한다”며 “아기를 가질지도 몰라서 담임을 못한다고 하는데 강제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말했다. 서울 E초등학교 관계자는 “요즘은 교사들이 교직을 직업으로 생각하니 힘든 건 하기 싫어한다”고 전했다.
초임 교사나 기간제 교사가 중요 업무를 맡는 것에 대한 교육 현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경험이 모자라 학생과 학부모에게 휘둘려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렵다는 의견과, 경력 교사보다 열정이 많고 학생들과 소통이 잘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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