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끼니 때우다 출동 일쑤… 요동치는 헬기서도 응급처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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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2>‘하늘 위 응급실’ 사람들

지난달 25일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의료진이 공사 현장에서 외상을 입은 환자를 닥터헬기로 실어와 응급실로 옮기고 있다. 닥터헬기 의료진은 부상 위험과 언제 출동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긴장 속에서 근무한다. 안동=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달 25일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 의료진이 공사 현장에서 외상을 입은 환자를 닥터헬기로 실어와 응급실로 옮기고 있다. 닥터헬기 의료진은 부상 위험과 언제 출동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긴장 속에서 근무한다. 안동=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난달 27일 오전 9시경 경북 안동시 상공. 조각구름을 헤치며 비행하는 응급의료전용헬기(닥터헬기)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30분 전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119에 신고한 조모 씨(71)를 영양군에서 태우고 안동병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헬기는 16분 만에 가로질렀다.

헬기 안에 누워 있던 조 씨가 “숨이 가빠…”라며 신음을 냈다. 김남규 안동병원 응급의학과장(39)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됐다. “12리드(심전도 검사)를 해보죠.” 김 과장의 지시에 응급구조사 서현영 씨(29·여)가 조 씨의 몸에 전극을 붙였다. 판독 결과 심장이 아닌 폐 질환으로 의심됐다. 김 과장은 이 결과를 곧장 스마트폰 메신저로 지상 의료진에게 전했다.

그 덕에 병원에서 대기하던 의료진은 조 씨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폐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중증 기흉을 밝혀 낼 수 있었다. 오른쪽 폐가 완전히 찌그러져 그대로 두면 사망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조 씨는 응급 시술 후 무사히 회복 중이다.



○ 닥터헬기 근무는 긴장과 위험의 연속

경북지역을 책임지는 안동병원 닥터헬기는 2013년 7월 4일 도입된 후 올해 3월 말까지 총 2098차례 출동해 1961명의 응급환자를 실어 날랐다. 전국 닥터헬기 6대 가운데 출동 횟수와 이송 환자가 가장 많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달 25∼27일 지켜본 이 병원 닥터헬기팀은 위험과 긴장 속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헬기 안에서 환자를 응급 처치하는 의료진엔 부상의 위험이 뒤따른다. 25일 오전 9시 반경 문경시의 한 공사 현장에서 건설 기계에 부딪혀 복강 내부가 찢어진 A 씨(19)를 데려올 때가 그랬다. 정맥을 찾아 약물을 투약하고 수혈 팩을 갈아야 하는데 난기류 탓에 헬기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그 와중에도 의료진의 양손은 손잡이 대신 환자를 붙들고 있었다. 서 씨는 “출동 중엔 의식하지 못했는데 헬기에서 내리고 나면 머리나 어깨에 멍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출동 대기 중에도 닥터헬기팀은 긴장을 풀지 못한다. 골든타임을 다투는 응급환자의 출동 요청이 언제 올지 몰라 병원 옆 별채 운항통제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식사는 거르거나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다. 운항통제실 책상 위엔 칼로리가 높은 간식과 인스턴트커피, 영양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지난해부터 닥터헬기팀에 합류한 정현진 간호사(26·여)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와서 하루를 버틴다”고 말했다.

의료진 옆에선 운항관리사 김진수 씨(38)가 쉴 새 없이 갱신되는 기상정보를 확인하느라 기상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헬기가 출동한 뒤에라도 구름 높이가 450m보다 낮아지거나 안개가 짙어지면 회항시켜야 한다. 환자를 신속히 이송하는 것 못지않게 의료진과 조종사의 안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북지역엔 특히 일월산(해발 1217m) 등 높은 산이 많아 상공의 날씨가 수시로 바뀐다. 지난달 21일에도 봉화군으로 환자를 데리러 가던 중 기상이 갑자기 나빠져 임무를 중단했다.

○ 소음 민원에 헬기장 쫓겨나기도

하지만 닥터헬기 운항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재 안동병원 옥상 헬기장은 7개월간 폐쇄된 상태다. 병원에서 20m가량 떨어진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의 크레인이 옥상 헬기장보다 높이 솟아 헬기의 이착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닥터헬기로 실어온 환자는 200m가량 떨어진 헬기 계류장에 내린 후에 다시 응급실까지 앰뷸런스로 옮겨야 한다. 그만큼 응급 수술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닥터헬기를 도입한 초기인 2013년엔 이 계류장마저 쓸 수 없었다. 계류장에서 50m 떨어진 농장주가 “헬기 바람 때문에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며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론 헬기 바람이 농작물 밭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관할 지방항공청은 주민의 민원을 받아들였다. 안동병원은 민원이 멈출 때까지 6개월간 병원으로부터 2.7km 떨어진 한 운동장으로 환자를 실어 날라야 했다.

소음 민원 탓에 실제로 출동이 중단된 사례도 있다. 2014년 3월 28일 중증 화상 환자를 데리러 가기 위해 시동을 건 닥터헬기를 한 주민이 자전거로 들이받으려 한 것이다. 정비사가 제지하자 이 주민은 계류장에 주저앉아 욕설을 하며 출동을 방해했고, 결국 해당 환자는 육로로 옮겨야 했다.

안동병원 닥터헬기팀 관계자는 “누구든지 언제 닥터헬기 덕에 목숨을 구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국민들이 생업에 바쁘고 다소 불편하겠지만 잠시 소음을 견뎌주면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안동=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닥터헬기#하늘 응급실#골든타임#헬기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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