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감동한 모성애…강릉시청 흰뺨검둥오리가족 구출 작전

  • 뉴스1
  • 입력 2019년 5월 15일 08시 53분


지난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청 앞 도로에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등장해 시민과 공무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강릉시 제공)
지난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청 앞 도로에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등장해 시민과 공무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강릉시 제공)
전국이 무더운 날씨를 보였던 지난 14일 강원 강릉시청에서는 난데없는 흰뺨검둥오리 구조 작전이 펼쳐졌다.

15일 강릉시에 따르면 전날 낮 12시쯤 강릉시청 앞 로터리 화단에 어미로 추정되는 흰뺨검둥오리 1마리와 새끼 13마리가 갑작스레 등장했다.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새끼들은 아직 도로턱조차 오르지 못할 정도로 가냘픈 모습이었다.

함께 있던 어미 역시 갑자기 몰린 사람들의 관심에 당황한 듯 연신 주위를 살피며 새끼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오리 떼를 발견한 시민의 신고를 받은 강릉시청 직원들은 구조를 위해 출동한 야생동물보호협회 관계자가 도착하기 전까지 무더운 날씨 속 오리들이 지치지 않도록 바가지로 물을 떠다주는 응급조치를 취했다.

때마침 점식식사를 마치고 청사로 돌아오던 김한근 시장도 “좋은 일이 생기려는 것 같다”며 더위 속 일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잠시 양산을 씌워주는 등 오리가족을 살뜰히 살폈다.

이윽고 도착한 박종인 야생동물보호협회 강릉시지부장은 우선 시청 직원들과 합동으로 어미 오리 구조 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몇 차례 시도한 결과 경계가 심하고 날갯짓이 가능한 어미를 포획하는데 실패했다.

어미는 일부러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의태 행동까지 보이며 새끼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유인도 했다.

지난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청 앞 도로에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등장해 시민의 공무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강릉시 제공)
지난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청 앞 도로에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등장해 시민의 공무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강릉시 제공)
이에 구조 관계자들은 방향을 바꿔 움직임이 비교적 적은 새끼들을 한 마리씩 조심스레 구조용 통으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처럼 새끼들만 있는 상황에서는 이들을 돌보기 위해 다른 오리가 있는 춘천의 야생동물 관련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어미와 새끼들은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구조 관계자들은 새끼들을 이용해 어미를 유도하는 묘수를 냈다.

이 또한 사람의 손을 탄 새끼들을 혹여나 어미가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어미 오리의 모정은 대단했다.

유도 작전 임무를 맡은 조해준 강릉시 환경과 주무관이 새끼들이 든 통을 들고 시청에서 남대천으로 향하는 대장정(?)을 시작하자 어미가 몇 걸음 뒤에 떨어진 채로 뒤뚱거리며 새끼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거리상으로는 1㎞가 조금 넘었지만 오리 가족들에게는 차량이 달리는 도로를 비롯해 온갖 장애물들이 넘쳐나는 여정이었다.

남대천으로 향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로를 건너야하는 상황에서는 구조 관계자들이 차량 통제라도 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미 오리는 이들의 걱정은 기우라는 듯 훌쩍 날아올라 도로를 건너는 영리함을 뽐냈다.

이런 기묘한 동행 끝에 마침내 남대천에 도착한 조 주무관이 새끼들을 한 마리씩 수면 위에 놓아줬다.

새끼들은 난생 처음 만나 본 물일 텐데도 자유롭게 헤엄을 치기 시작했고 뒤따라온 어미도 그제야 안심한 듯 물에 뛰어들어 유유히 유영을 시작했다.

조 조무관은 “제 자신도 자식들이 있는 입장에서 새끼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온 어미 오리를 보니 가슴이 뭉클한 모정을 느꼈다”며 “본의 아닌 발걸음이었지만 정말 뿌듯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박종인 야생동물보호협회 강릉시지부장은 “오리는 자신이 낳은 새끼가 아니더라도 품어주는 습성이 있는데 다행히 어미 오리가 잘 따라줘서 구조를 마칠 수 있었다”며 “도로를 날아올라 건너는 등 예상치 못한 모습에 ‘정말 똑똑하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밝혔다.

강릉 남대천의 흰뺨검둥오리. (뉴스1DB)
강릉 남대천의 흰뺨검둥오리. (뉴스1DB)
한편 보통 습지에 거주하는 흰뺨검둥오리가 이처럼 한참이나 떨어진 도심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보통 3주간에 걸치는 흰뺨검둥오리 알의 부화 기간으로 봤을 때 산란기를 맞은 어미 오리가 시청사 화단 내 덤불에 알을 낳은 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지낸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현재로는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그 후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자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강릉에서는 남대천이나 경포 습지에 흰뺨검둥오리가 주로 서식하며 이맘때쯤 어미 오리가 새끼들을 이끌고 한가로이 물위를 노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강릉=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